빅토르의 MBTI는?
경의선숲길 매미
2024-05-29 23:11
전체공개
겁쟁이의 탐구욕. 도미노의 블록을 잘못 건드렸음을 깨달았을 때, 이 겁쟁이는 넘어질 다음 블록을 먼저 치워버렸어야 했다. 촤르르륵 파도처럼 덮쳐오는 운명의 도미노 앞에서 이 겁쟁이는 그저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열심히 세워놓은 도미노가 모두 쓰러졌을 때 화를 참지 못한 겁쟁이는 거리로 나가 미친놈처럼 활보했다. 그 눈은 무서운 결의에 차 있다.
이 책의 사건도 흥미롭지만, 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은,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빅토르의 주변에는 자신의 삶보다도 빅토르의 안녕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주는 엘리자베스, 클레르발, 아버지가 있다. "무거운 불행이 닥치긴 했다만, 우리에게 남은 것들을 잘 지켜야지. 떠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옮기자꾸나", 빅토르의 아버지는 반평생을 함께 해온 가족들을 잃으면서도 아들이 아픔을 성숙하게 소화하도록 돕는다. 그 외 만나는 모든 이들은 빅토르에게 호의적이었으며 (빅토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았을 때야 비로소 퉁명스러운 인물들이 등장) 최후에는 생판 모르는 배의 선장이 빅토르를 돌봐준다.
그에 비해 '괴물'의 주변 인물들을 보자. 숨을 쉼과 동시에 마주한 것은 자신의 창조자가 내지른 불쾌함이다. 그 이후로 괴물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외면받고 질타 받는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소일거리를 몰래 도와주었던 오두막집의 가족들, 물에 빠져 구한 소녀를 구했을 때 어깻죽지에 박힌 총알. 그는 어딜 가나 주변에서 구타와 혐오와 질타를 받는다.
이 상반되는 주변 환경에서 괴물은 오히려 조화롭게 살고자 처절하게 노력했고, 겁쟁이는 치열하게 도망친다. 빅토르의 행보는 괴물을 쫓는 복수심이 아니라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운명의 도미노로부터의 도피로 보인다. 그의 복수심은 자신의 잘못을 정정당당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나온 겁쟁이의 씩씩거림,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겁을 집어먹은 것, 겁을 집어먹은 행동을 하는 것, 겁쟁이인 것 자체는 대단히 잘못된 게 아니다. 그도 그저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를 MBTI로 정의하면 우리는 겁쟁이 빅토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ISTP. 그의 I 성향은 몇 달간 연구소에 틀어박혀 살며 연구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 클레르발 외에 다른 친구나 지인들을 넓게 사귀지 않는 모습,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직접적인 표현보다 편지로만 마음을 전하는 모습 등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S 성향은 자신의 연구가 어떤 학문에 기초하는지 알면서도 끔찍한 실험을 시작한 점, 나중에 자신의 사건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로버트 월튼에게 풀어 놓은 점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학문을 파고들어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나 새로운 괴물이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모습을 보면 N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그의 탐구심이었으며, 자신의 기존 경험 (괴물이 사람을 해친다)에 기초한 지극히 실재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T 성향은 두말할 것도 없다. F라면 괴물이 이야기를 다 터놓았을 때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P 성향은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체를 생명으로 만드는 전무후무한 연구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점, 그 이후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점,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를 잃던 날, '운 좋게도 어떤 일로 적이 사악한 협박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p253)을 해버린 점, 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MBTI 로 빅토르를 파악하고 나면, 이해되지 않던 그의 행동과, 그에 대한 미움이 반감한다.
본인의 탐구욕으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놓고 도망만 다니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총을 들고 쫓은 것도 결국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과오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도피로 보인다) 빅토르가 한심하지만, 그의 연구는 순수한 탐구욕과 학문적 욕심에 기초했음을 이해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지난달 우리가 이야기했던 AI 개발이 있다. 개인적 성취와 탐구욕에 빠지면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목표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발명은 그 임팩트를 다 파악하기 전에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결과를 미리 다 파악해 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과학자와 개발자들의 탐구욕을 미친 짓이라고 그저 비난하지도 않고, 빅토르의 탐구욕을 이해하기도 하는 이유는, 얼마 전 필리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점점 더 깊은 심해가 궁금하고 가만히 있는 성게와 산호를 이리저리 움직여 관찰하고, 잠자는 복어의 몸통을 부풀리고, 눈앞을 지나가는 상어의 지느러미를 당겨보고 "싶어 하는" 등 해양 생물의 생태계에 멋대로 발을 들이는 상상을 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다른 의미로 야생동물에게는 침범과 희생일텐데도 말이다.
이 책의 사건도 흥미롭지만, 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은,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빅토르의 주변에는 자신의 삶보다도 빅토르의 안녕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주는 엘리자베스, 클레르발, 아버지가 있다. "무거운 불행이 닥치긴 했다만, 우리에게 남은 것들을 잘 지켜야지. 떠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옮기자꾸나", 빅토르의 아버지는 반평생을 함께 해온 가족들을 잃으면서도 아들이 아픔을 성숙하게 소화하도록 돕는다. 그 외 만나는 모든 이들은 빅토르에게 호의적이었으며 (빅토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았을 때야 비로소 퉁명스러운 인물들이 등장) 최후에는 생판 모르는 배의 선장이 빅토르를 돌봐준다.
그에 비해 '괴물'의 주변 인물들을 보자. 숨을 쉼과 동시에 마주한 것은 자신의 창조자가 내지른 불쾌함이다. 그 이후로 괴물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외면받고 질타 받는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소일거리를 몰래 도와주었던 오두막집의 가족들, 물에 빠져 구한 소녀를 구했을 때 어깻죽지에 박힌 총알. 그는 어딜 가나 주변에서 구타와 혐오와 질타를 받는다.
이 상반되는 주변 환경에서 괴물은 오히려 조화롭게 살고자 처절하게 노력했고, 겁쟁이는 치열하게 도망친다. 빅토르의 행보는 괴물을 쫓는 복수심이 아니라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운명의 도미노로부터의 도피로 보인다. 그의 복수심은 자신의 잘못을 정정당당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나온 겁쟁이의 씩씩거림,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겁을 집어먹은 것, 겁을 집어먹은 행동을 하는 것, 겁쟁이인 것 자체는 대단히 잘못된 게 아니다. 그도 그저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를 MBTI로 정의하면 우리는 겁쟁이 빅토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ISTP. 그의 I 성향은 몇 달간 연구소에 틀어박혀 살며 연구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 클레르발 외에 다른 친구나 지인들을 넓게 사귀지 않는 모습,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직접적인 표현보다 편지로만 마음을 전하는 모습 등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S 성향은 자신의 연구가 어떤 학문에 기초하는지 알면서도 끔찍한 실험을 시작한 점, 나중에 자신의 사건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로버트 월튼에게 풀어 놓은 점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학문을 파고들어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나 새로운 괴물이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모습을 보면 N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그의 탐구심이었으며, 자신의 기존 경험 (괴물이 사람을 해친다)에 기초한 지극히 실재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T 성향은 두말할 것도 없다. F라면 괴물이 이야기를 다 터놓았을 때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P 성향은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체를 생명으로 만드는 전무후무한 연구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점, 그 이후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점,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를 잃던 날, '운 좋게도 어떤 일로 적이 사악한 협박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p253)을 해버린 점, 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MBTI 로 빅토르를 파악하고 나면, 이해되지 않던 그의 행동과, 그에 대한 미움이 반감한다.
본인의 탐구욕으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놓고 도망만 다니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총을 들고 쫓은 것도 결국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과오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도피로 보인다) 빅토르가 한심하지만, 그의 연구는 순수한 탐구욕과 학문적 욕심에 기초했음을 이해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지난달 우리가 이야기했던 AI 개발이 있다. 개인적 성취와 탐구욕에 빠지면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목표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발명은 그 임팩트를 다 파악하기 전에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결과를 미리 다 파악해 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과학자와 개발자들의 탐구욕을 미친 짓이라고 그저 비난하지도 않고, 빅토르의 탐구욕을 이해하기도 하는 이유는, 얼마 전 필리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점점 더 깊은 심해가 궁금하고 가만히 있는 성게와 산호를 이리저리 움직여 관찰하고, 잠자는 복어의 몸통을 부풀리고, 눈앞을 지나가는 상어의 지느러미를 당겨보고 "싶어 하는" 등 해양 생물의 생태계에 멋대로 발을 들이는 상상을 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다른 의미로 야생동물에게는 침범과 희생일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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