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woply
2024-07-17 21:05
전체공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산업에서 디지털 기술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극도로 제한된다.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생산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손실 없이 공유하고, 협업을 통해 디테일을 더해 나가는 작업은 이제 디지털 기술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과거 20년 전과 비교하면 디지털 기술 덕분에 저비용으로 매우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효용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이 공감은 되지만 너무 과한 우려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경험을 돌아봤을 때, 너무 많은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거나, SNS에 신경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정작용 같은 것이 생기는 걸 느낀다. 어느 순간 눈앞을 장악한 혼잡함에 무언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불쾌함 같은 걸 느낀다. 그리고 곧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행동을 재조정하게 된다.
나의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보단, 디지털 이주민에 가깝기 때문일까? 디지털 기술이 주는 즐거움과 효용을 즐기면서도, 디지털 기술 밖의 세상에서도 그 이상의 풍부한 감정과 경험을 추구한다. 여전히 바벨을 어깨 위에 올리고,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된다. 그 안에서 체험하는 미묘한 경험이 삶에 생동감을 더한다.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주말에 야외에 나가 바람과 나무와 그 아래서 좋아하는 사람과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눌 때 느껴지는 풍성한 감정도 여전히 좋아한다.
일터에는 디지털 세상에 둘러싸여 살지만, 일터를 밖에서는 디지털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사실 크게 들지는 않는다. 디지털 기기 속에서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고, 핸드폰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곁에 두고 있지만 그 외에도 실제 세상에서 여러 활동을 통해 인내심과 끈기를 훈련하고, 다른 차원의 감각을 즐기고, 집중하고, 지연된 만족에 도전한다. 개인적 경험 안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주는 문제점보다 효용을 더 크게 느끼고 있고, 그걸로 인해 무언가 삶이 망가지거나 균형을 잃어버리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저자의 우려가 나의 불감증인지, 저자의 과민함인지 잘 판단되지 않는다.
SNS에 중독되었던 시기도 잠깐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공허감에 거리를 두고 허상으로 나 자신을 스스로 속인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던 거 같다. 그래서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부정적 사례들에 공감이 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정말 무분별하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까지 방치되고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동의가 되었던 것은 학습 능력과 장기기억에 대한 영향이다.
디지털 정보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표면적 학습으로 그때그때 딱 필요한 수준의 지식만 찾아 쓰는 경우가 많다. 즉각적으로 소비하는 디지털 정보가 깊이 있는 이해를 저해하는 요소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정보를 깊이 분석하고 숙고하는 방식이 아닌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깊은 이해와 사고의 확장을 경험 했던 과거의 일(8개월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수학을 독학했던 일이나, 1년 동안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하나의 결론에도 하위를 구성하는 정보 계층은 상당히 다층적이고 복잡할 수 있다. 똑같은 결론 정보 하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정보의 연결과 구성은 엄청난 규모의 복잡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즉각적으로 습득한 디지털 정보는 텅 빈 결론 하나를 제공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조합하고 연결하고 숙고하는 방식으로 도달한 결론은 그 안이 꽉 채워져 있다. 즉, 배경지식이 탄탄한 정보와 답만 알고 있는 정보는 밀도와 응용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결국 복합적이고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연결된 정보는 더 깊이 있는 이해로 연결되기 때문에 장기기억에도 압도적 차이를 보인다.
결국 저자의 설명처럼, 하나의 개념을 체계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망을 구성하는 정보의 연결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체계를 재구성하는 숙고의 과정이 필요한데, 빠르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결론만 얻은 디지털 정보는 그러한 신경망의 구성을 형성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을 생각의 재료 수집 도구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이는 의식적 노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쉽게 놓치지 쉽다. 인간은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패턴을 읽는 능력이 있지만 정보 자체가 파편화되어 있고, 그마저도 외부 저장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면 연결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깊이 있는 사고에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정보의 연결작업이 필요하고, 디지털 기술에 단순히 의존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정보의 재료를 모으는 도구로 활용해야 사고력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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