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행하게 하는 문화

2403 시즌 -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시고르자브종
2024-04-16 22:32
전체공개



『글쎄. 무엇보다도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는 말게. 그것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해. 이런 상황에 처한 나보다도 말야.』 -모리-

 

사피엔스의 미래 트레바리 클럽에서 3시즌 정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리고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독서모임인 북클럽 오리진을 시작하며 일종의 다짐을 하고자 한다. 독후감과 토론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대체로 반골 또는 사회통념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였다. 학창시절 부당한 권위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고,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쏟기도 하였으니까. 그런 나 자신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약 2년 전부터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고 트레바리 활동을 하면서 위와 같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의심이 들었다. 나는 반골이 아니라 사회통념, 관습, 예의를 철저히 내재화한 모범생(나는 이런 류의 모범생이 결코 되고 싶지 않다)이 아닐까?

 

트레바리를 중점으로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독후감을 쓸 때, 내가 진정으로 느낀 것보다 해당 책을 읽은 우아한 독자라면 응당 생각해야 되는 것(이 또한 내가 생각해낸 것이지만)에 관한 글을 썼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WEIRD 책을 읽고나서 가장 큰 변화는 종교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인데(종교는 비이성, 사회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종교의 뿌리, 역할, 밈적 강력함을 맛보고 더 이상 부정적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독후감에는 ‘나 WEIRD의 복잡한 가설과 인과관계를 모두 이해했다!’라는 식의 내용 정리가 들어있다. 한편으로는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고 단어선택 및 비문 등에 과하게 집착하며 나의 단어, 문장이 아닌 것들을 어색하게 풀어냈다(문장 끝에 여지를 남겨두는 ‘~~한듯하다/ ~~인 것처럼 보인다/ ~~때문이지 않을까?’ 따위의 표현 -> 이것은 함부로 단정을 짓거나 확신하지 않는 것이 지적으로 올바르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됨). 독후의 감을 솔직하게 써낸 것이 아니라 클럽원들을 백일장의 심사위원으로 상정하고 고정된 정답을 써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토론 시간에도 이어진다. 10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그중 8가지는 ‘내가 이런 말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겠지?’ 또는 ‘이 말 하면 나의 무식이 드러나겠지?’ 또는 ‘너무 말 많이 하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려나?’ 따위의 걱정을 하며 입을 떼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와 동시에 안온한 침묵 속에서 날것과 같은 클럽원들의 말과 태도를 속으로 지적하고 있었다(사실 그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평소보다 말을 더 한 날은 집에 돌아와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모범생적 통념, 태도를 내재화하고 있는듯하다(지극히 한국적인 통념). ‘전문가가 아니면 아예 말하지마’, ‘타인의 생각을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반기를 들지 않는 게 예의야’, ‘항상 단일한 정답(저자의 의도 따위)은 존재하는거야’, ‘말 많이 해서 밑천 드러나기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나아’, ‘나대지마, 나서지마’, ‘질문하는 애들은 다른 목적(주로 선생님한테 잘 보여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이 있어서 그런거야’ 등등

 

나는 위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기 싫다. 눈치 보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모범생 같이 행동하기 등과 같은 사회통념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온전한 나를 내놓지 못해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게 하고, 진정한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한 감정을 느끼게도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타인과의 관계를 그저 표면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실 독서모임의 클럽원들보다 내가 평소에 가진 생각들을 편하게 얘기하고 또 이해받을 수 있는 집단은 없다. 여기서도 이렇게 눈치 본다면 난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과 용기를 가지고 다짐을 해본다. ‘눈치 없는 사람’, ‘나대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 ‘예민한 사람’이 되어보자. 진정으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혹여나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 있다면 당신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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