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대한 반성

2407 시즌 -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가을아침
2024-08-12 11:25
전체공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J.파머)을 읽고 . 김재성
 

1.
  서재를 둘러본다. 십진분류는 아니라도 끼리끼리 잘 어울려 있다. 과학 수학 시집 소설 문학평론 Newton이나 NGC와 같은 월간지... 책을 산 시기나 제목 작가 출판사 등을 보면 나의 관심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느껴진다. 행간의 매모나 느낌을 적어둔 걸 읽어보면 내 생각의 추이나 변덕스러움도 느껴지고... 그런데 책장을 아무리 둘러보고, 독서노트를 찾아봐도 정치나 사회와 관련한 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단 한 권도. 
  아무리 편식이 심하다고 해도 이럴 수 있을까. 인간이 생산해 낸 모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깊었고, 이를 채우기 위해 인문이든 자연이든 불문하고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해왔는데 한 켠에 이렇게 뚜렸한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2.
  내 서재의 책은 내가 고른 것이다. 학회나 지인들이 보내온 책이 몇 권 있기는 하지만, 거의 다 내가 고르고 내 주머니를 털어 산 책이다. 그러니 내 독서의 편식증에 대하여는 일언도 변명할 수 없는 셈이다. 부끄럽지만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그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보다 내 독서의 지독한 편식증이다. 

3. 
  책을 읽을 때, 보통은 꼼꼼하게 밑줄을 긋고 모르는 부분을 검색해가며 행간에 매모를 채워 넣지만 이 책은 그렇게 읽지 않았다. 컨텐츠를 보며 적당히 훝어 읽는 식. 그러니 책에 대해서 독후를 적는다는 것은 적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눈에 들어오는 몇 부분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4.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아(124쪽)에 대한 한 생각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그 구성원에게 민주주의 지속시킬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독립적이면서 또한 상호의존적인 자아이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은 타인과 공존할 수도 있지만 서로 배치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어떻게 공동의 목적에 부합되는 더 큰 틀안에서 조화시킬 것인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밑받침이다. 
  건강한 자아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지만 한 편으로 이러한 생각이 공동체에 의존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나의 생각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은 성숙한 자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에게 다른 의견과의 마찰을 조율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학습의 기회를 부여할 때 이런 자아는 형성될 수 있다는 것.

5. 민주주의는 서로 이해하는 것(186쪽)
  우리는 이웃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서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얼굴을 보고 의견을 나누면서 생각의 모가 조금씩 닳아지고 둥글둥글하게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생각이 모여지곤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웃은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아파트 문화, 맞벌이 부부, 대중문화, SNS 등을 통해 삶을 공유하는 공간적 의미는 퇴색했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문화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거대 매스미디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신으로 군림하며 자신의 생각을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생각으로 탈바꿈시켜 주입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어 간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주입받고 그것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며 자유시민으로서의 주장을 펼친다. 몇 개의 주류 매스미디어가 대중을 몇 부류의 집단으로 나누어 가지고,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집단의 광기를 부추겨 파워게임을 벌인다. 이것이 현대의 민주주의일까. 어설프게 읽고 이런 글을 쓰는 나의 생각 역시 매스미디어의 주문을 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

  갱단과 정부의 다툼, 지진과 같은 재해가 겹치며 국가가 사라지고 국민만 남은 아이티의 비극(G9라는 갱단이 행정/입법/사법을 장악하고 있다)을 보면서, 또는 독재정부의 폭압에 시달리는 국가들을 보면서 우리가 왜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에 걸맞는 자아를 형성해야하는지를 생각한다. 오랜 세월의 투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라는 선물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소비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 주인이 주인역할을 하지 않으면 주인은 사라진다. 민주주의,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면서 주인역할에 소홀히 하면 누군가 나 대신 주인이 될 것이다. 그는 잔혹한 독재자일 수도 있고 다른 국가에서 온 침략자일 수도 있다. 둘째, 내 독서의 편식증부터 좀 추스려야겠다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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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경비병 | 3개월 전

북클럽에 참여하니 책을 좀 더 골고루 섭취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함께 다양한 책 소화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