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심하지 못했음

2407 시즌 -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자장가
2024-08-22 00:46
전체공개

일상 생활의 이곳 저곳에서 그 지점과 마주치게 된다. 한참 동안을 서행해서 나들목 출구 앞에 도달했을 즈음 옆에서 다른 차가 쓱 끼어들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앞서 주차한 사람이 선을 밟고 주차해서 한쪽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등등. 사소한 일에 쉽게 마음이 상하는 내가 윌리엄스가 말했던 '민주주의에 걸려있는 질문들과 씨름하는 곳'을 마주하는 지점이다.

윌리엄스는 결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의 마음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움직인다고 거짓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103쪽)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집단의 의사결정 원칙을 정하는 정치적 이념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 그리스어: δημοκρατία dēmokratía[*], 영어: democracy)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 민중에게 있고 민중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민주주의 - 위키백과(wikipedia.org)))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보다 더 나은 제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e others), 우리는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표방하고, 애지중지한다.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이념처럼 순조롭게 작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저자 역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독재 보다 효율적이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은 우리가 1인 1표의 민주주의 정치 철학에 삶의 한쪽 발을 두고 있으면서, 다른 한쪽 발은 '힘'의 크기에 따라 의사결정권을 다르게 주는 시장 경제체제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각 개인의 본성에 따른 욕구를 반영하는 데에는 시장 방식의 의사결정 방식이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실제 생활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해야 된다고 생각할까? 내가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 명확할 때에도, 민주주의의 규칙을 어겨도 내게 어떠한 불이익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할 때에도 그 믿음은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저자는 40년간 지켜온 세 가지 믿음을 통해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의사결정 체계의 유용성과 미국 정치제도의 효과성과 인간의 마음이 지닌 역량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믿는다. 그 확고한 성취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약을 믿는다.
나는 미국의 정치제도를 믿는다. 그 제도의 설계에 내재된 천재성과 최선으로 사용될 때 성취해온 분명한 이로움을 믿는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을 믿는다. 진실과 정의, 사랑과 용서를 담아낼 수 있는 그 역량을 믿는다. (77쪽)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실천적인 방법으로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이라는 '마음의 습관'을 기르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고,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믿음'의 부분이라면, 그것이 실천되는 영역은 여전히 협소하다. '우리가 자신의 필요와 걱정을 서로에게 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구성원의 선의를 신뢰하는' 집단이 형성되는 것은 퀘이커교 모임, 신뢰의 서클과 같은 소규모 집단의 '사례'로서 제시될 뿐이며, 그것이 확장되어야 하고, 확장될 수 있을 것이며, 확장하기 위해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다짐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가 독자의 '공감'과 '다짐'을 촉구하는 방식의 문구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소박하고 현실적이다.
개인적.정치적 삶에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모든 긴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부수고 희망을 무너뜨리는 현실 말이다. 그 간극의 다른 한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어지는 삶 말이다. (298쪽)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진실하거나 아름답거나 선한 것들은 어느 것도 역사의 즉각적인 문맥 속에서 완전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301쪽)

이야기를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40년째 같은 지점에서 머물면서 고민하고 있다.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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