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기관사

더듬이
2025-07-21 20:05
나는 열차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무궁화호를 좋아한다.
지금 다니는 열차 중에서는 가장 느린 열차다.
이제는 배차되는 노선이나 횟수도 많지 않다.
더 느린 비둘기호도 있었지만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난 다음부터는 차례로 지워지고 이제 무궁화호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무궁화호 정도의 속도가 좋다.
굳이 급하게 오가야 할 일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고속철을 습관적으로 타는 사람들도 매번 정말 그만큼 시간이 급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게 더 많으니까 그럴 테고, 어느새 고속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숏츠도 빨리 감기가 습관인 요즘인 다음에야 타고 가는 열차도 빠른 걸 선호하는 심리는 물으나 마나다.
요즘은 기차 안 풍경을 봐도 차창밖을 즐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들 손 안의 스크린에 시선이 가 있다.
그들에게 '차창밖 풍경'이란 건 멸종된 지 오래다.

무궁화호 기관사가 책읽기 모임에 왔다.
아주 젊은 기관사인데, 지금은 서울과 천안(?)을 오가는 부기관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저녁 독서 모임에 오는 기관사라...
어쩐지 근사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알고 보니 전직이 사서라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봐도 책을 좋아하고 다방면으로 독서량도 많은 것 같다.
나는 뜻밖의 직업과 취미가 어우러진 사람을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시를 쓰는 버스 기사라든가, 밤에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화장실 청소부 같은 사람을 보면 진짜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사람이 그렇게 드문 유형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반면, 상투적인 자랑거리로 여기저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도 많거니와 별 관심이 가지도 않는다.
오늘도 약간은 의무적으로 훑어본 뉴스에 등장한 인간 면면을 보며 몇 분만에 눈을 돌리고 말았다.
중학교 시절 신문을 봤을 때도 그랬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저토록 뻔한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가.
(그나저나 역시나 정치인들은 패거리다. 바뀐 정부의 조각 인사를 보고 새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제대로 된 견제 세력이 없으면 권력은 꼭 제 버릇이 나오게 마련이다.)

정말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간다운 참신한 인간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왜 비슷비슷하게 경쟁하고 싸우며 고만고만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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