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아침 하늘

더듬이
2025-09-23 08:06
첫눈에, 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 때문에 덜컥 계약을 해 버렸다.  그때도 가을이었던가.
10년도 더 전,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 집에 마음이 꽂혀 눌러 살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그 후로 여름의 열대야가 잠을 설치게 한다든가, 긴 장마철 폭우 때는 여기저기 비가 샌다든가 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서 삶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매일 아침 이렇게 나를 맞아주는 창 너머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사시사철 그때그때 비슷한 듯 다 다르지만, 요즘 같은 초가을이면 동쪽 창너머 쾌청한 하늘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광경이 정말 볼 만하다. 아침 산책 겸 운동을 갔다 와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저 멀리 푸른 하늘빛과 선홍빛(붉은 기운은 날마다 다르다)이 어우러져 마치 하얀 캔버스 위에 흥에 겨운 화가가 제 맘대로 그려 놓은 한 폭의 추상화처럼 장관을 이룬다.
얼마전부터는 작은 화분 세 개를 동쪽 창틀에다 옮겨 놓고 식물들의 풍경까지 함께 즐기는 맛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다. 아기 목욕 시키듯 분무기로 차례차례 물을 뿜어 주고 나면 이 푸른 잎사귀들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 같은 기운을 뿜뿜 풍기곤 한다. 덩달아 활력이 솟는다.
생생지락(生生之樂). 중국 서경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이 국정 철학으로 삼았다고 해서 더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그냥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함께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나는 늘 생기 있는 것(사람도 포함하는 말이다), 활기찬 것을 찾아 다니고 가까이 하려 한다. 그래야 나 역시 생기 있게 살아가는 것은 물론, 행여나 나보다 더 생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 활기가 부족한 사람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더라도 얼마간 나눠줄 수가 있다.
누가 우주는 인간에게 무심하다고 했나. 누가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했나. 그 똑똑한 사람의 말 뜻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나, 우주와도 자연과도 '감응'해 보지 못하고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인간처럼 수다스럽지 않고 자연이 사람처럼 늘 살갑게 굴진 않지만, 우리는 하나에서 나와 서로 통하는 것이 있고 서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의 일부이고 그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내 삶의 기운을 펼쳐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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