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여행기_ 몸이 되는 여행

오렌지
2025-09-23 17:45
안녕하세요?
이번에 오리진 멤버 + (멤버로 영업중인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의 컨펌을 받고 여행기를 공유합니다.

아직 가 본 적이 없으시다면 망경산사의 템플스테이와 영월 관광을 추천 드립니다.

무척 긴데요, 시간 내어 읽어 주시는 분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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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되는 여행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해외여행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인터넷도 물론 보급되지 않아 누군가가 정보를 얻는 곳은 주변 사람이나 학교,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간접적이고 정제된 내용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보더 더 예전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태어난 마을에서 떠나 본 적 없이 생애의 전부를 한 장소에서 마감하는 경우도 흔했다. 
 나는 지난 주말에 두 명의 친구와 고도 800m에 위치한 망경산사에 두 번째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석탄을 캐는 광부와 그의 가족들은 이 높은 곳에서 남들보다 늦은 봄과 빠른 겨울을 맞이하며, 두꺼운 옷을 입고 매일 절에 가 기도를 올리며 평생을 살다가 떠났을 거였다. 언제나 같은 길을 걷고 항상 보는 얼굴과 비슷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마 마을 속의 여러 사람은 너와 나의 구분이 현대인처럼 현격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았을 거라 예상된다.
   
 두 친구와 나는 이틀 간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것 같다.’ 는 여행 감상을 여러 번 공유했다.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가 중심이 된 북클럽이나, 글로벌하게 운영되는 명상 센터를 통해서 만난 사이로, 평생 우리가 어느 날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적도 없는 어딘가의 남이었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 중 잘 모르는 서로를 여행의 동행자로 고른 기준은 이 사람의 특성상 ‘어딘가 잘 맞을 것 같다.’가 가장 큰 동기였고,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고르는 것부터 커다란 모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박 이일 일정은 다양한 스케줄로 채워졌다. 로컬 맛집 가기, 인스타에 올릴 법 한 예쁜 카페 가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비경 찾아가기, 템플스테이 일정 따르기, 유명한 미술관에 가 전시 관람하기까지. 근육통으로 저릿한 몸을 이끌며 유럽 패키지 여행처럼 풍성한 체험을 이어가는 와중 여행기를 어떻게 써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너나할 것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틀 동안 어떤 뉘앙스의 여행기를 왜 쓰면 좋을까 고민했다. 하나로 추려낸 동기는, 생동감의 파노라마라 말로 정리가 잘 안되는 묵직한 경험들을 조리 있는 말로 꾸려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 글의 최종 목적은 ‘소화시키기.’ 이다. 밥을 먹으면 몸 안에서 소화되어 영양분이 되거나 내장에서 걸러져 몸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용도에 맞게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몸과 마음 안의 적재적소에 ‘분배하기. ’ 
   
 오늘날엔 사람들이 우주의 수많은 별처럼 개인화되어 나뉘고 멀어지는 중이다. 우리는 다양한 자아를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뿌려두며 파편화되며 동시에 영혼이 바스러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있다면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 뿐일지 모른다는 감상을 나는 여행기를 쓰려고 마음 먹고 앉아서 성찰하는 와중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개인에게 세상이 강제하는 의사결정의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 벌어지는 혼란이 있고, 이것이 초발전을 이어나가는 사회 공통의 문제라 스케일이 부담스럽더라도 결국 해결법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가지런한 정리정돈 뿐인 거였다.
   
 어디에 가고, 뭘 먹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조리 남겨지는 오늘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비밀이 없는 세상이다. 살면서 만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마저 영화와 다큐멘터리와 같은 창작물의 형식을 통해 현실에 구현되어 있다. 그러니 나는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나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느낄 모든 것도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점점 감동은 적어지고 화는 늘어난다. 어디서 무슨 일을 겪으면, 그 일이 미리 어딘가에 적혀있는 ‘퀄리티’에 얼마나 벗어났으며 나는 그만큼을 누리지 못했는지를 이어서 확인하게 되기에.
   
   
 그래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경사 가파른 강원도의 산길을 오르며 숨이 차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날 보통 사람들은 목적지인 도롱이 연못에 오려다가도 차를 돌렸을 거라서였다. 
 네비에도 정확히 나오지 않는 대략 30분 도보의 산길을 이 방향이 맞겠거니 하며 따라 올라가자 흙탕물이 된 연못과 짙은 안개가 원시림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홍보자료에 있는 것처럼 연못에는 파란 하늘도 비치지 않았고, 주변에는 대충 나무벤치 하나 가져다 놓은 성의 없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러움 그대로인 이 관광스팟의 탄생배경은 1970년대 석탄을 캐던 갱도가 지반침하로 주저앉으면서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망경산사의 운탄고도와 도롱이 연못은 60km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석탄 때문에 바닥이 까만 강원도 영월의 산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남자들은 눈을 뜨면 갱도로 향하며, 여자들은 살림하다 연못이나 절에 가서 도룡뇽을 확인하거나 부처에게 빌며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기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의 삶에서 50년 뒤에 나타난 나는 안녕을 빌 광부 남편이 없어서 연못 주변에 빗물 맺힌 야생화의 귀여움 따위에나 눈길이 간다. 안개 낀 얇고 길다란 나무 숲 사이를 걷는 친구가 얼마나 낭만적으로 찍힐지 구도를 잡는 데 여념이 없다. 
 일 나간 가족이 오늘은 못 돌아올지도 몰라서 영적 존재에 기대는 간절한 기도의 삶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신적 지식망의 소유자인 우리에게 있어 슬쩍 지나치는 수많은 역사의 가엾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하산하며 영주가 내게 묻는다. 

 “나는 여기는 내가 가자고 한 곳이라 갈 거였는데, 그래도 비가 많이 오고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멀고, 돌아갈 이유도 충분하니까 포기하자고 하면 갈 거였어. 그런데 너희 둘이 너무 결연하게 아무 말도 없이 산을 오르는 거야. 무슨 생각이었어?”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한다.
   
 “가파른 산을 오르니까 심박수가 올라가서 유산소 해서 좋았어.”
   
 모름지기 사람이란 어려운 순간을 함께 했을 때 무난해야 좋아지는 법이라 지금 같은 순간을 기다렸어. 라는 말은 지금은 속으로만 한다. 이건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는 미래를 향해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두 번째로 방문한 망경산사는 여전히 꽃대궐이었다. 스님과 보살님, 봉사자들이 호미를 사용해 죽도록 돌을 골라낸 고운 흙에서 만개한 모든 풀들이 다른 장소에서 자라는 어느 종류와 비교해도 생기 넘친다. 잎사귀에서 잎사귀로 수도 없이 각종 풀벌레가 뜀박질을 하며 찌르르 울어대는 가을의 초입이었다. 
   
 나는 망경산사에 두 달 전 첫 번째 템플스테이를 한 후에 때때로 눈을 감고서 절과 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쉴새없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과 소리를 추억했다. 
 어디선가 본 뇌과학 상식에는 뇌건강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주변 환경을 수시로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써 있었다. 늘 정체된 사무실의 풍경은 나를 쉽사리 막연한 미래의 공포로 데려갔기에 경험에서 믿음이 갔다. 
   
 신선한 가을의 풍경이 고개를 이끈다. 밤나무에서 커다란 밤송이가 퍽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뾰족하고 튼튼한 밤가시 속에는 양 끝단에 통통한 밤알, 중간에 납작하게 눌려 살찌지 못한 밤쥐포가 들어 있다. 
 밤나무 하나에 열린 밤송이가 얼마나 많은지 이 많은 밤송이를 살찌게 키워낸 나무에게 비료를 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찬 기온과 긴팔 옷 말고도 가을을 느끼는 생생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스님은 일부러 밤나무 아래의 의자에 밤을 주워다가 올려 놓는다고 했다. 스님 자신이 밤나무 아래의 의자에 앉아서 사색에 잠길 때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왔으면 하는 은근한 의도가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밤나무 아래, 의자에 덩그러니 놓여진 밤에 홀린 듯이 나가와 앉는 장면이 영상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다. 그 순간이 어떤 미래로 그 사람을 이끌지는, 그 사람과 주변의 흐름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었다. 다만 예기치 못했던 남이 내게 남긴 작은 흔적이 반드시 계기가 된다. 

그러니 이 곳은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독특한 면모를 가진 절이었고 나는 어쩐지 다시 가고 싶다는 그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에 가졌던 감상의 실마리를 오늘 조금 더 쫓기 위해서, 전에 쓰지 못했던 스테이 체험기를 구체화 시켜 내기 위해서.

 밤 주워가기 시간이다. 스테이에 참여한 다른 일행들이 절에서 준 비닐봉지에 열심히 밤을 담아가는 동안 난 10개 내외의 알밤을 주변 숲 구석구석에 던진다. 이 밤들은 다람쥐 밥이었으면 좋겠고, 어느 것 하나는 새 밤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가능성을 그린다. 흙에 떨어진 밤들이 내 간식으로 먹히는 것 보다 더 재미진 꿈들을 품고 있기에 다음 실마리를 남겨 놓는다. 
 남이 주는 것이라도 다 내 몫으로 가져갈 필요 없이 굴기. 이건 망경산사가 이 곳의 스타일이라고 내게 알려준 첫 번째 스테이의 교훈이었다. 
   
 찬 바람의 가을이라 따끈한 온돌방이 깊은 잠을 불렀다. 나는 고대하는 순간이 있었다. 다음 날 날씨가 좋다면 같이 온 친구들이 반드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정을 나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경산사는 커다란 잔디밭을 두 곳 가꾸고 있는데, 한 곳은 방문객이 절 사람에게 안내받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산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잔디밭에 절에서 빌려주는 요가매트를 가지고 올라가면 절 전경과 영월의 산맥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에서 햇살을 받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스테이 이튿날 아침에는 다들 망경사의 운무를 보러 일찌거니 절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에 우리만 잔디밭을 차지하고 누울 계획을 짜고 있던 거였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남들처럼 망경사에 가자는 이현을 막는다.
   
 “우리 요가하러 가자.”
 “망경사에 가는 게 아니라?”
 “응. 지금 가는 게 좋아.”
   
 별다른 이유도 제시하지 않는 나를 이현은 순순히 따라와 준다. 이현이 명상과 요가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기에 자신 있게 요가매트를 들고 잔디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망경산사의 잔디밭은 나도 처음 누려 본다. 오늘은 두 달 전보다 더 쾌적하고 아름답다. 역시 이 잔디밭에서 듣는 바람 소리가 가장 귓가에 와 닿는다. 이현도 예상한 것 이상으로 좋아해줘서 기뻤다. 
   
 “장난 아니지. 이런 곳 없지.”
   
나는 친구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 줄 수 있었다는 것에 어깨를 으쓱한다. 지금 머리를 감고 있는 영주도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 것이다. 그 동안 집에서 매일같이 하는 스트레칭을 여기서도 한다. 이현에게 명상법을 곁다리로 약간 배운다. 코 끝 아래쪽, 인중 근처에 신경을 집중하고 찬 공기를 들이쉬며 주변의 온도, 습도, 내 몸의 변화를 감지하다가 나의 몸을 거치고 따뜻해진 숨을 내쉬는 것을 온전히 수긍하기. 그러다가 눕고 싶으면 눕기. 건물이나 나무로 가려지지 않아 그대로 내 몸에 맞닿은 듯 한 하늘 속에 풍덩 뛰어들기.

 뒤이어 데려 온 영주도 이 순간을 아주 좋아했다. 삶의 조목조목 자신의 느낌을 경탄 담아 풀어내는 재능이 있는 영주는 직감처럼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웠다가 앉았다가, 이야기를 나눴다가 조용히 바람만 맞기도 한다. 
 우리들은 광부 남편과 기도하는 아내처럼 같은 삶의 궤적을 공유하지 않지만, 각자의 마음속에서 이 순간을 제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이겠지만, 어떤 모습의 좋은 것을 맞이하고 있는지는 비슷한 표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는 증거는 지금에 있다. 

 이렇듯 망경산사의 스테이는 스케쥴이랄 게 없다. 첫 날의 짧은 오리엔테이션과 야생화 정원 해설, 스님과의 차담 이후에는 요가를 하던 근방의 망경사를 가던, 방 안에서 잠을 자던 모든 것이 자율적이다. 이런 형식의 템플스테이는 실험적이지만 높은 재방문율을 기록한다. 
 해야 하는 것을 만들어두지 않는 것. 어떤 느낌을 얻어가길 표시하지 않는 것.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조차 느끼게 하지 않을 것. 대단히 포용적인 망경산사의 태도는 결정해야 하고 확인해야 하는 데에 녹초가 된 사람들에게 경직되지 않을 수 있도록 생각의 틈새를 제공한다. 
 나는 겨울에도 봄에도 이곳을 다시 올 것이다. 이곳이 나를 그냥 둠으로서 이 장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고 싶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과 엇갈려 아무도 없는 망경사를 우리만 독점한다. 운탄고도의 멀디 멀고 높고 많은 산맥을 비 온 뒤 맑은 날의 햇살이 가림 없이 내어준다. 소원 적는 리본에 나는 마카로 슬며시 써 내린다. 
 앞면은 ‘받은 만큼만 주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라고 적고, 뒷면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생각도 해봤으면.’ 이 소원인지 고민인지 모를 말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적당한 데 슬쩍 걸어 놓기만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일밖에 없지만, 안 그럴 때가 나타날 때, 나는 이타성과 자기보호의 양면에서 서글프게 고민하곤 했었다. 
   
   
 영월에서 서울에 돌아가려면 오전 11시에는 출발하거나 아예 늦게 저녁 6시 이후에 가야 한다. 중간 시간은 길이 막혀서 오랜 시간 도로에서 버티게 된다. 우리는 이번에는 이현이 고른 코스인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원주의 외곽에 위치한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커다란 콘크리트 미술관은 아주 정교한 설계와 큼지막한 공간을 활용하여 퀄리티 높은 전시를 상시 기획한다.
 자연의 흐름과 내버려둠의 미학을 실천하는 템플 스테이 이후의 코스로 1mm의 허술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것이 의도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충격이 제법 컸다. 우리는 빠른 적응을 위해 봇물 터지듯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있나? 이건 1박 2일의 여행이 아니야. 여행지가 가진 감상이 제각각 너무 달라서 어떻게 이 이틀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귓가에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우리가 여행을 실시간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더라도 기다림 없이 시간은 가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한솔제지박물관의 종이역사 도슨트를 한 시간 가량 듣고, 종이에서 반도체 칩으로 이어지는 데이터의 역사에 대해 곱씹어 보기도 전에 안토니 곰리의 스테인레스로 만들어낸 인체 주제의 추상예술에 이른다. 
 텅 빈 인체의 실루엣만 재현하는 스테인레스의 차가운 곡선은 언틋 개인이 가진 정서적 경계 같기도 하고, 단단한 테두리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텅 빈 내면에 공기만 통과하는 중이었다는 허망한 존재적 인식을 추상한 듯도 하다. 
 위기감을 느낀다. 쏟아지는 압도적인 정보들을 자체적으로 정리해내지 못하면 세상 풍파에 휩쓸리는 무가치한 존재로만 남게될 것 같다. 

 이현이 보자고 한 전시는 우리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고 제임스 터렐의 공간예술이었다. 이 전시는 착시와 빛, 원형 디자인을 매우 잘 쓴 공간 속에 들어가는 체험인데, 마치 우주나 SF영화의 한중간에 뚝 떨어진 기묘한 감각을 강제한다. 평면인 줄 알았던 네온사인은 사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이며, 춥고 안개낀 것처럼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막연함은 제임스 터렐이 공군으로서 비행 중 표류했을 때 느낀 공포감을 재현한 것이라는 데에서 이해가 간다. 
 4개의 각기 다른 전시공간은 모습은 달리하지만 구조적으로 미궁에 빠져 공포감과 환각을 경험하다 현실로 탈출한다는 컨셉을 이어나간다. 
   
 문명의 클라이막스에서 더 이상 어디에서도 안정감과 뚜렷한 희망을 제시받지 못한 채, 큰 기대 없이 서로를 조심스레 맞이하고 떠나 보내는 인간들은 무엇을 스스로에게 명시하면 마침내 괜찮을까. 
   
 여행 이튿날의 해가 진다. 전시도 다 보았고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뮤지엄 산의 작은 정원에는 이것저것 꽃들이 심어져 있는데 망경산사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들이 심어져 있다. 붉은 나무수국과 해가 있을 때만 조금 피어나는 보랏빛 보석 같은 용담, 그리고 부드러운 아기의 머리카락 같은 촉감의 은쑥이 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은쑥을 쓰다듬는다. 이거 망경산사에도 있었는데 여기도 있네. 무슨 쑥이라는 이름이 정확히 생각이 안 났는데 은쑥이네, 생긴 거 그대로네.
   
 은쑥을 처음 본 건 두 달 전 망경산사 가기 전에 들렀던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에서였다. 수목원 해설자님은 이건 꼭 만져봐야 한다. 며 우리를 멈춰 세워 은쑥의 머리를 쓰다듬게 했었다. 신기하지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연서도 나처럼 놀라워했다. 망경산사에 가서는 내가 이현과 영주를 불러 은쑥의 머리를 쓰다듬게 했다. 뮤지엄 산에서는 은쑥을 보자마자 모두가 반가워한다.  세 가지 장소에서 만난 같은 매개가 내 안에서 하나의 실뭉치로 엮여 커진다. 
 처음에는 남에게 배우고, 두 번째는 배운 걸 남에게 알려주고, 마지막에 모두가 같은 걸 행복하게 누리게 되기 까지가 추억을 먹고 소화해 영양분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어디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나서 또 다른 사람과 함께 해서 좋았던 마음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스스로를 살게 함이 누군가를 소중히 여김과 같은 결이며 나는 이게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문장으로 표현해냄으로서 존재를 확신하게 될 수 있기를. 
 그것이 나의 태도가 되며 내 모습이 우정을 자아냄을, 남과 교류하는 나를 통하여 커다란 세상이 뒤흔드는 존재의 혼란에서 스스로를 구출해 냈음을. 단순해지지 못하는 삶에서 영양분을 자아내 꼭꼭 씹어 먹는다. 
 여행은 몸 안 구석구석 스며들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말기에 움직여서 가 볼만한 일이다. 
   
   


 250923 상미 드림
어디선가 은쑥을 보게 되면 꼭 쓰다듬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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