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순환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2-07 17:44 (수정됨)
공주 틈싹에서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로 독서 모임을 했다.
모임 시간은 저녁인데 조금 일찍 가서 가벼운 구경을 했다. 처음엔 고마나루로 향하다가 살짝 길을 잘못 들어 그냥 구 도심으로 와서 새로 문을 연 나태주 문학관에 갔다.
근사했다. 아주 현대적인 건물에 나태주 시인의 저술들과 애장품, 인생책, 그리고 (아마 학교 선생님으로 교실에서 쳤을) 오랜 풍금이 전시돼 있었다. 작은 강연장도 근사했다. 부디 잘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닫을 시간이라는 직원의 말에 걸어 나오니 바로 옆 구 문학관으로 길이 이어졌다.
창 너머로 누가 앉아 있는 게 보이는데, 오- 나태주 시인 그분이다. 그 시간까지도 책상 앞에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노트북이 아니라 볼펜? 같은 것으로 몸을 조금 기울여 쓰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천천히 지나가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시인과 눈이 마주쳤다. 웃으며 인사를 드렸더니 마주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러고는 굳이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지나쳐 길을 내려오는데 뒤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부르시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시인이 문을 열고 나와서 팔을 뻗어 뭔가를 건넨다. 얼른 뛰어가서 인사를 드리고 받아 드니 한손에 꼭 맞게 들어오는 작은 시집이다.
나태주 대표시를 골라 찍은 비매품으로 표지에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오, 이런 선물을 여기서 받게 될 줄이야. 마음을 차 오르는 감동의 물결 . 실물 시집 선물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이 팔순 노시인의 작지만 커다란 호의였다.
<선물>에 나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선물 일화가 떠올랐다. 널빤지 담장 구멍 틈 사이로 주고 받은 그 선물이 평생 자신의 시쓰기로 이어졌다는. 

근처 늘보리 식당에서 보리밥 한상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입소문이 나서 찾아 왔는데 과연 옛날 집밥의 갖가지 나물들과 시래기국이 입맛에 딱 맞았다.
식당 주인의 친절한 설명까지 결들여지며 선물 같은 밥상에 배도 마음도 기분 좋게 불러 왔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칭찬의 말과 마치 자신이 배 불리 먹은 듯 함께 기뻐하는 주인 내외의 응대. 이런 모든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키오스크 따위는 그곳에 없었다.

아늑한 틈싹에서 일곱 시 조금 전에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아홉 시가 지나서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선물>에서 이야기한 선물의 순환과 증식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그렇게 포개지고 더해지고 불어나며 몇 바퀴를 돌고 또 돌았다. 서로 먼 곳에서 찾아서 모여든 각자가 꺼내 놓은 선물 같은 이야기로 선물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불어나는 과정을 또 한 번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아, 내 인생이 얼마나 될까. 오늘 저녁 그 몇 백만 분의 일을 이 분들이 나눠준 선물 덕분에 또 잘 살아냈다. 집에 돌아가서도 단잠을 잘 수 있겠다.
<선물>은 소리 소문 없이 얼마 전 4쇄를 찍었다.

이윤 증대가 목표인 상품 경제(나아가 돈이 상품인 금융 경제)에 길들어 있는 현대인은 선물도 상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책에서 말하는 깊은 의미의 진정한 선물은 존재 방식, 관계의 방식, 삶의 방식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의 보답으로 더 낫게 만들어 내주는 것의 순환.

선물/재능, gift. given. 주는 것. 주어진 것. 받은 것.
세상을 (획득과 지배와 정복의 소유욕의 눈이 아니라) 선물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주고 받는 듯 살아서 움직인다. 죽은 듯 가만 있는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마냥 지속되는 변화도 아니고, 모든 것이 서로 주고 받으며 자라고 증식하는 선물의 관계로 본다면. (사실, '준다'는 표현은 우리 일상 언어의 곳곳에 등장한다. 와 주세요, 봐 주세요, ~해 주세요. 있어 줄게, 들어 줄게, ~해 줄게..)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내게 주어졌고, 나는 세상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처 다 개봉되지 않은) 선물이다. 나는 나 자신도 아직 무엇이 들어있는지 다 알지 못하는 선물 상자다. 그 모든 것을 온전히 표현하고 드러내고 내줌으로써 세상이 기뻐하고 세상과 더불어 하나가 되고 스며드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진심과 전력을 다하는 것.
하나의 리얼리티로서 나 자신이 무궁무진한 리얼리티들로 된 세상의 구성에 참여하는 것. 이것을 진정성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 알아 본다.
자신을 가치 있는 것에 기꺼이 내주는 삶, 바치는 삶, 헌신하는 삶, 매진하는 삶이 잘사는 삶 아닐까. 우리는 가끔 무아지경일 때 그런 걸 맛볼 수 있다. 그것이 발작적인 순간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때 복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또 다른 작은 발견
-대화 도중에 "사람을 '기피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사람을 '깊이 아는' 사람"이라고 잘못 알아들었다.
놀랍다. 비슷하게 들리는 말이 정반대의 뜻을 갖고 있다니.
-영문 기사에서 본 grift란 단어와 Gift란 단어도 그렇다. 하나는 선물인데, 다른 하나는  사기, 협잡이라는 반대의 뜻이다.

받은 것은 주어야 한다. 선물은 순환(해야)한다.
선물로 받은 시집에서 몇 편을 골라 선물로 띄워 보낸다.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받은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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