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기에 지금 해야 한다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7-13 15:35
김우창, 문광훈의 대화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 이데아, 자각> 중에서

김우창: T. S. 엘리엇의 「리틀 기딩Little Gidding」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물과 불이 / 도시와 목초지와 잡풀을 잇고 / 물과 불이 / 우리가 거절한 희생을 조롱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황폐하게 마련이고 끝장나게 마련이라는 것이 전체의 요지입니다. 목숨과 세대의 연속도 끝나고 세계 자체의 종말처럼 물과 불이 사람의 일을 무화하지요. 그런데 이 구절에서 기이한 것이 "물과 불이 / 우리가 거절한 희생을 조롱한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난다면, "우리가 거절한 희생" 이 아니라 "우리가 바쳤던 희생"을 조롱해야지요. 그런데 한 일이 우스워지는 것이 아니라 안 한 일이 우스워진다는 겁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허무한 걸 생각하면 많은 걸 후회하게 됩니다. 한 일이 허무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될 것을 안 했다고 후회 하는 겁니다. 얼른 생각하면 해 봐야 소용없으니 안 한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바로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때 그걸 내가 하지 않았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뭘 하겠냐.' 할 때, 술이나 잔뜩 먹고,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데 술 먹으면 뭘 하겠어요? 반대로 내일 죽는다면 바로 내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일을 지금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물론 그 귀중한 일도 허무한 일이지만. 그러니까 죽음은 인생을 완전히 허무하게 만들면서도 귀중하게 하는 것이지요.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고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게 하는 중요한 테두리 중 하나입니다. 그걸 잊어버리는 것이 현대의 세속주의가 지닌 큰 문제점 같아요. 이걸 보통 차원에서 얘기하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음이라는 버스를 타고 죽음을 향해 가는데, 거기서 서로 아우성을 치며 영원히 살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행 시간이 잠깐인 걸 알면 서로 좀 참으면서 모든 사람이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다른 놈 죽여 없애고, 다른 사람은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 나는 드러누워서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지요. 죽음은 사고의 훈련으로서, 삶의 훈련으로 중요한 것 같아요. 우주의 무한성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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