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두루미 탐조여행 일지

두루룩 프로필 두루룩
2026-02-03 18:26 (수정됨)
서둘러 얼기설기 쓴 2026 철원 두루미 탐조 북캠프 일지.
(일행 중 더 기억나는 것,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으면 댓글로 보완해주면 감사하겠다.)

올해는 모두 열 명. 아침 6시를 전후해 차량 두 대로 출발했다.
만남의 장소로는 서울역처럼 사람이 많을 것 같은 곳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탈서울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가는 길에 아침식사로 차안에서 김밥 하나와 귤 하나씩을 해치웠다. (한 사람은 뒀다 먹었다.)
다른 팀은 휴게소에 잠시 들른 것 같다.

서울을 빠져나오는 길도 잠시 철원 도심을 지나니 평야가 펼쳐진다.
탁 트인 시야 저 너머에 설산이 우뚝하다.
흑백의 우람한 자태가 수묵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군초소를 지나는가 싶더니 눈두렁 사이로 드문드문 쇠기러기 무리며 두루미 가족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너머 해가 떠오르면서 온기가 전해져 온다.
날씨는 좋을 것 같다.

목적지인 두루미 평화타운에 도착하니 8시 20분쯤이다.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15명 단체 관광팀을 대표한 사람들이 여럿이다.
가까스로 우리 일행 10명이 두 번째 버스 정원을 채우고 오전 예매는 마감했다.
옆 건물 휴게실로 와서 테이블에 앉으니 옆 자리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 보니 중국말이다.
아, 여기까지 진출했구나. (더 이상의 소감은 생략하겠다.)

버스 출발 30분 전 두루미 전시실에서 시작된 김미옥 해설사의 해설에 홀린 듯 빠져든다.
여러 번 왔지만 새로 알게된 사실도 많았고 알던 이야기도 새롭게 들렸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철원에서 삼대째(나중에 물어보니 그 이상 선대부터라고 했다) 나고 자란 분인데, 구순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고 했다. 갖가지 자격증이 열 개란다.
인간 백세 시대가 되는 동안 두루미는 수명이 반토막 나서 오십세라는 이야기가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태어날 때 봤던 두루미를 예전 인간 수명 한계였던 육십 환갑 잔치를 할 때까지도 봤으니 사람보다 장수하는 영물로 여겨 십장샹에도 등장했는데 지금은 역전된 거라고 했다. 왜 그리 됐겠는가.
철원역 처녀 동상 앞에서는 전해오는 설화를 들려주면서, 우리 옛날 이야기에선 왜 만날 여자가 제물이 되고 남자가 살아남 거냐고 반문했다. 단박에 나는 김미옥 여사의 팬이 되었다.
아이스크림 고지로 올라가려는데 정면 머리 위로 양 날개를 배트맨처럼 펼친 수리가 날아올랐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작년에 봤던 학춤 구경은 끝내 못했다. 

버스투어 후엔 차로 한 십분 거리에 조성돼 있는 탐조대로 가서 두루미떼를 봤다. 재두루미 두루미 떼가 수백마리 있는 걸 보고 입이 벌어졌는데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뭐에 놀랐는지 한꺼번에 날아올라 저편으로 흩어지듯 이동해 갔다. 덕분에 군무와 같은 장관을 보긴 했지만 한번 이동한 새들이 금방 다시 날아올 것 같진 않았다.
점심시간도 지나 배도 출출해 옛 노동당사 유적 앞 역사문화공원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우거지갈비탕과 해물순두부 등등을 주문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통에 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식후에는 구경 삼아 옛날 거리를 복원해 꾸며놓은 사진관에서 코스프레 놀이를 해본다.
옷을 골라 입고 벗고 하는 동안 안내원의 '친절 코스프레'도 못지않게 재미있다.

시속 2km를 넘나드는 달팽이 모노레일 트램을 타고 소이산으로 올라갔다.
한때 미군 초소가 있었단 산 정상에서는 360도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철원 대평원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오래전 화산 폭발로 용암이 분출하면서 흘러내려 형성된 땅.
지금도 지하에서 솟는 용천수의 온도가 지금 같은 겨울에도 15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는 물이 얼지 않고 고니며 청동오리며 뭇새들이 온천욕하듯 발을 담그고 유영하고 있다.

어느새 저녁 때가 되어 철원 시내 마트에서 장을 봐 온 뒤 바베큐 모드로 돌입.
밖에서 숯불을 피우고 삼겹살이며 목살을 굽는 동안 안에선 이야기꽃이 핀다.
식후에는 각자 요즘의 자신을 이야기하는 '마이 스토리' 시간.
골라온 사진과 음악을 함께 보고 들으며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이던가.
동해의 일출을 볼 때마다 소원을 빌다가 이번엔 소원을 빌지 않아도 되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아예 꿈을 잃고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밤이 깊어지면서, 골라왔던 문장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잠자리에 들었다.
까무룩.

다음날도 다들 얼리 버드가 되었다.
숙소 옆 저수지에서 잠을 자고 새벽 기상 비행에 나설 새들을 보기 위해 우리도 동이 틀 무렵에 나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번엔 쇠기러기들이 반대편에서 한무리가 선회 비행하는 광경을 보였을 뿐 하얀 눈이 얼어붙은 저수지에선 이륙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보니 멀리 두루미들이 보였다. 두루미는 기상이 늦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쉽지만 철수.

아침식사는 남은 돼지고기를 라면스프로 볶은 두루치기에 면을 더한 짬뽕면이었다.
조리법을 두고 옥신각신 훈수가 난무하던 끝에 작품은 완성되었고 먹을 땐 다들 맛있다는 말밖에 없었다.
숙소 정리를 마치고 10시에 체크아웃.
오늘도 햇살이 환하다.
한탄강 은하수대교로 가서 무인카페 건물로 올라가 계곡을 내려다보고 두루미 사진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카페에 와서 커피와 빵을 곁들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행 중 누군가가 누군가를 외동 아들이라는 뜻의 '귀남'이라고 불러 박장대소가 터졌는데, 정작 당사자에게 뜻을 아느냐고 물으니 '귀여운 남자' 아니냐고 해서 더 심하게 폭소가 만발했다는 사실만 적어 둔다.
그 사이 일부는 은하수 대교를 가로지르며 주상절리까지 감상한 후 합류해 마지막 순례지인 식당으로 향했다.

예약해둔 단골 만두전골 집에 오니 매번 문 앞에서 반겨주던 '이모'가 안 보인다.
그 댓신 녹음된 방송(AI는 아니겠지?)이 인사말을 대신한다.
드디어 자리가 난 세 테이블에 나눠 앉아 전골을 먹고 있는 중에 홀연히 '이모'가 나타나 손님들에게 라이브로 인사말을 들려준다.
"오늘도 저희를 먹여살려 주시느라 이곳까지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잘 살고 있는지를 오늘도 생각한다"는 만두전골집의 철학자가 감동을 준다.
나와서 두루미 탐조 캠프의 대단원을 박수로 마감한 후 두 차로 다시 나눠 상경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급기야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인간이 왜 중요한가요?"
어떤 답이 오갔을까.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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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어네 셋째딸 프로필 리어네 셋째딸 | 8시간 전
후기 덕분에 탐조여행의 즐거웠던 추억이 다시 생각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