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날 등산도 좋구나

봉천동 조지오웰 프로필 봉천동 조지오웰
2026-04-12 14:56 (수정됨)
이른 아침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바닥은 축축하고 갓 돋아난 새순과 새잎들은 작은 손으로 물방울을 움켜쥐고 있다. 여린 것들을 세상에서 보호해 주는 양막 같았다. 중간쯤 올라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려 했지만 자욱한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산은 나의 시야를 가려 자신과 함께 있을 땐 도시에 한눈팔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래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탁!탁!탁!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좋은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 오르막길을 더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 잘 보이게 됐을 때 우리 고개는 대각선 위를 향하게 됐다. 안개는 온 하늘마저 가려 하얀 한지처럼 보였고 나무 가지들과 새는 그 위에 그려져 마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주먹만한 새 3마리가 그림속으로 들어왔다. 그 새들은 3초도 가만 앉아있지 않고 가지를 계속 옮겨 다녔는데, 다행히 우리 시야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노래 부르느라 바쁜 부리와 이동하느라 바쁜 날개는 그림에 활기를 더 해줬다. 왼편에서는 이 작품으로 우리를 인도한 딱따구리, 오른편에는 노래 부르는 분주한 작은 새들. 나는 그 자리에서 "드러머와 보컬" 같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그래 보였다. 한쪽에서는 드럼 비트를 한쪽에서는 노래를 불렀으니 말이다. 일행 한 명이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이렇게 위를 오래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던가?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나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한 커플 중 여성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라고 장난스럽게 푸념했다. 나는 오히려 좋았는데, 두 다리로 수고한 것보다 과분한 경치를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 높은 산을 오른 것도 아닌데, 하늘에 닿아 구름이 걸려있는 그런 높은 산 정상에 오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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