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같은 5월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5-11 07:07 (수정됨)
오랜만에 클래식 연주회를 갔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이 이끄는 코리안쳄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였다. 단장인 김민 선생은 올해 84세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로 무대에 올라 협연한다. 신창용의 피아노 연주가 놀라웠다. 힘이 넘치다가도 섬세하기 그지 없었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처음 들었는데 너무너무 좋았다. 왜 천재 소리를 들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재일 한국인 지휘자 박태영이 박수 끝에 무대에 불려 나와 들려준 앵콜곡 G선상의 아리아! 극진한 연주를 들으며, 가슴 한 켠이 무너지면서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바흐는 정말이지 불멸이다.
무엇보다 어느새 주로 음악을 기기로 듣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직접 연주하는 실황의 인간적인 장면과 입체적인 소리를 들으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런 횟수를 늘려야겠다.

노동절 연휴 땐 마이산에 갔다. 오전 6시에 나섰는데도 서울 빠져나가는 도로부터 막히기 시작해 국도로 빠졌는데도 12시가 다 되어 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챙겨간 김밥은 차 안에서 아침으로 떼웠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낮 산행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오가며 먼 발치에서 보기만 했던 산이다. 말귀 모양이어서 마이산이다. 687미터 정상 턱까지 나선형으로 계단이 나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경관이 후련했다. 내려와서 예약해 둔 펜션으로 가니 무슨 일인지 오버부킹이 되어 있었다. 긴장이 고조되던 찰나, 주인 어른이 자기 집의 방에서 묵도록 해 주겠다고 해서 수습이 되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 그날 저녁에는 주인 아저씨와 인삼주까지 곁들여 가며 급 친해졌고 73세라는 (하지만 육순 정도로 뵈는) 그분의 7남 1녀 중 장남으로 살아온 이야기가 구수했다. 달게 1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상경하는 길에 주인 내외의 추천으로 대둔산에 들렀다. 말 그대로 잠시 들러 짧게 산책만 하고 갈 요량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숲길이 좋아 조금씩 따라가다 보니)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천대(878미터)까지 오르고야 말았다. 역사는 그렇게 이뤄진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되는 수가 있고, 하려고 들면 결국 해내고 마는 수가 있다.

토요일 아침엔 청계산을 올랐고 낮엔 영문 읽기 모임을 마치고 양재천변을 산책했다. 네팔 부스에서 '싱잉 볼' 시연을 봤다. 동근 황동 그릇에서 소리가 길게 노래하는 게 신기했다. 며칠 전 양재천을 걷다가 양재숲으로 접어들어 매헌 윤봉길 기념관까지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일요일엔 여의도 아침 산책을 했다. 6시에 나서니 휴일 오전이라 도로가 막히지 않아 모처럼 한강변 드라이빙을 즐겼다. 차창을 열고 팔을 내밀자 손가락 사이로 물결처럼 빠져나가는 공기의 양감이 더없이 부드럽다. 얼마만인가. 집결지에 모인 후 일행들과, 이날 일을 주도한 일일 자원 가이드의 안내로 생각지도 못했던 도시 생태 여행을 했다. 이날 본 동식물들만 수십 종에 달하고 각각의 장면들은 그날 그곳 그 순간에만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늘 가까이에 있기만 했던 한강변과 여의도를 새로 발견한 날이다.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다.

머리 밖 세상, 화면 밖 세상은 이토록 경이롭다. 만끽하고 있는 요즘이다. 뭘 해도 좋을 5월 아닌가.

사람마다 주어진 수명을 하루 단위로 쪼개어 쿠폰으로 나눠준다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한 장씩 쓸 때마다 사라지는(줄어드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이 실물로 눈에 들어오고 손에 잡힌다면 그 소중함을 체감하며 좀 더 그 가치에 맞게 제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아침에 했다.

그 사이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법>을 읽은 일도 적어 둬야겠다. 그만큼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언제 여러 사람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고 싶다.

어제 저녁 빌린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서가에서 책을 찾던 중에 어느 한쪽에서 연세가 지긋한 여성 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책을 정리하던 사서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어머 도서관이 어쩜 이렇게 좋아요. 제가 외국에 살다가 오랜만에 들어와서 사는데, 여기에 이런 게 있을 줄 몰랐어요. 시설이 어쩌면 이렇게 좋아요. 우리 어릴 때는 이런 게 없었거든요."
감탄을 연발하던 그분의 한 마디가 더 들려왔다.
"어쩜 이렇게 좋아... 제가 오늘 일기에 써야 할 게 참 많아요."

예전에 처음 미국에 잠시 체류할 때 동네 도서관을 보고 감탄했던 일이 떠올랐다. 외국인인 나도 주민처럼 등록해서 관외 대출까지 할 수 있었다. 선진국이란 이런 거구나 못내 부러워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느새 그런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동네 도서관 시설에 관한 한은 그렇다. 하지만 통계로 보면 사람들은 책은 안 읽는다. 이제 책 읽기 좋은 나라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눈과 관심은 다른 곳으로 가 있다.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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