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나오는) 살인자는 이렇게 말한다. “잘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 양심 없이 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 성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해야 할 일이란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소리 없는 고독한 대화를 결코 시작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 사물을 되짚어 보는 일도 결코 하지 않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악함이나 선함의 문제가 아니며, 지능이나 어리석음의 문제도 아니다.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교류(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성찰한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모순을 저지르는 것을 개의치 않을 것이며, 이는 그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설명할 능력도, 의지도 결코 갖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니, 그 범죄가 다음 순간 잊힐 것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필요로서, 즉 의식 속에 주어진 차이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비인지적이고 비전문화된 의미에서의 사고는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늘 내재하는 능력이다;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없는 능력은 지능이 부족한 다수의 ‘특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그 가능성과 중요성을 발견했던 자기 자신과의 교류를 회피할 수 있는, 과학자, 학자, 그리고 정신적 활동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존재하는 가능성이다.
만약 생각, 즉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둘이 하나인 것’이 의식 속에서 주어진 우리 정체성 내부의 차이를 실현함으로써 양심을 그 부산물로 낳는다면, 판단, 즉 사고의 해방적 효과의 부산물은 생각을 실현해, 내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항상 너무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는 현상 세계에서 그것을 드러나게 한다. 생각의 바람(wind)이 드러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또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적어도 나 자신에 있어서는, 위기가 닥친 드문 순간에 참사를 막아줄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 '생각과 도덕적 고려' 중에서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교류(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성찰한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모순을 저지르는 것을 개의치 않을 것이며, 이는 그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설명할 능력도, 의지도 결코 갖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니, 그 범죄가 다음 순간 잊힐 것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필요로서, 즉 의식 속에 주어진 차이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비인지적이고 비전문화된 의미에서의 사고는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늘 내재하는 능력이다;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없는 능력은 지능이 부족한 다수의 ‘특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그 가능성과 중요성을 발견했던 자기 자신과의 교류를 회피할 수 있는, 과학자, 학자, 그리고 정신적 활동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존재하는 가능성이다.
만약 생각, 즉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둘이 하나인 것’이 의식 속에서 주어진 우리 정체성 내부의 차이를 실현함으로써 양심을 그 부산물로 낳는다면, 판단, 즉 사고의 해방적 효과의 부산물은 생각을 실현해, 내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항상 너무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는 현상 세계에서 그것을 드러나게 한다. 생각의 바람(wind)이 드러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또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적어도 나 자신에 있어서는, 위기가 닥친 드문 순간에 참사를 막아줄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 '생각과 도덕적 고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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