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 없이 주의를 뺏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업무에서나 일상에서 누구나 멀티태스킹을 요구받고 또 점점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정말 창의적인 일을 하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모노태스킹' 즉,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았음을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David Epstein의 Range: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 아래 발췌해 소개한다.
이사벨 아옌데는 1981년 1월 8일 첫 소설 <영혼의 집>을 쓰기 시작한 날 이후로 43년간 18개월마다 한 권 꼴로 책을 출간해 왔다. 83세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여성 스페인어 작가다. 지금까지도 매년 1월 8일 방문을 닫고 집필을 시작하는 의례를 반복한다.
이런 의식은 일종의 ‘약속 장치commitment device’다. 더 큰 목표를 위한 자발적 구속이다. 헬스장 결석과 벌금 연결시켜 운동 독려하는 것과 같다. 그 대가로 얻는 것은 순수한 집중력이다.
작가들은 최초의 재택근무자들이었다. 위대한 작가는 대개 작업 위한 특별한 공간과 시간 마련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야 안젤루는 호텔 방을 빌려 벽의 그림을 다 떼낸 걸로 유명하다. 위고는 글 쓸 때 외출 유혹 이기려고 옷을 숨겨두곤 했다. 프루스트는 소음 차단 위해 침실 벽을 코르크로 덮었다.
작가들은 최초의 재택근무자들이었다. 위대한 작가는 대개 작업 위한 특별한 공간과 시간 마련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야 안젤루는 호텔 방을 빌려 벽의 그림을 다 떼낸 걸로 유명하다. 위고는 글 쓸 때 외출 유혹 이기려고 옷을 숨겨두곤 했다. 프루스트는 소음 차단 위해 침실 벽을 코르크로 덮었다.
이런 관행의 이유는 지속적인 집중이 인간에겐 아주 비자연적이어서다. 우리 뇌는 주변의 새로운 광경과 소리에 주의 기울이도록 진화했다. 산만함이 기본값이다. 연구에서도 방해 요소 없으면 사람들은 더 창의적이 된다. 우리는 추상적인 개념에 지속적으로 집중해야 하면서 비로소 사고를 위해 자신을 격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단어, 숫자, 기타 상징적 내용에 몇 시간씩 주의 기울이는 건 우리 뇌에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지금 우리가 그런 어려움 겪고 있다. 조사 결과, 일반적인 사무직 노동자는 평균적으로 약 3분마다 일을 전환하는 걸로 나타났다. 2004년 측정치였다. 2012년엔 75초, 2022년엔 45초로 점점 단축됐다. 끊임없는 멀티태스킹의 광기에 휩싸인 셈이다.
멀티태스킹은 주의 분산을 자초하는 행위다. 이는 업무가 관련 있는 거라고 느낄 때조차 대가를 치른다. 스스로 자기 업무를 전환하는 경우에도 전환 횟수가 많을수록 시간은 더 많이 소요된다. 실제 업무 환경에서 주의 전환 횟수가 많을수록 일과 후 평가되는 생산성은 낮아지는 걸로 나타났다.
중요한 업무에서도 멀티로 했을 때 수행 능력은 떨어진다. 그런 응급실 의사는 처방 시 실수를 더 많이 하고, 그런 조종사는 비행 중 실수를 더 많이 범한다.
더 무서운 것은 점은 우리가 익숙한 수준의 방해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매일 온종일 알림에 방해받는다면, 그 자극이 사라져도 무의식중에 익숙한 산만함의 리듬을 유지하려고 자신을 방해하려 든다. 책상 위나 주머니에 폰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원이 꺼져 있더라도, 인지 수행 능력은 떨어진다. 특히 폰 의존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하다.
나는 머리에 몇 바늘 꿰매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며칠 동안은 천천히 움직이고, 정기적으로 얼음찜질을 하고, 머리를 홱 돌리지 말고, 앉은 자세로 자라는 지시를 받았다. 처음엔 모든 게 성가셨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자 오히려 만족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 일기에 내가 하는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결론은 내가 특별히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였다. 책을 읽든, 컴퓨터 작업을 하든, 양치질을 하든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모노태스킹이 비결이었다. 몸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것이 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집중해서 일정한 속도로 일을 할 때 그 일을 정말 즐길 수 있음을 알았다.
결론은 내가 특별히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였다. 책을 읽든, 컴퓨터 작업을 하든, 양치질을 하든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모노태스킹이 비결이었다. 몸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것이 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집중해서 일정한 속도로 일을 할 때 그 일을 정말 즐길 수 있음을 알았다.
사람들의 기기 간 주의 전환 속도가 빠를수록 스트레스 수준은 높아진다. 멀티태스킹은 혈압 상승을 유발하고, 지나치면 면역 체계에도 이상을 일으킨다. 정신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긴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선 자발적 정제와 제약이 필요하다.
선구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심리학자, 경제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자신의 모든 연구가 ‘사람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한 가지 주제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선택지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와 선택의 잠재적 결과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대안을 두고 최선의 선택을 찾는 ‘최대화maximize’ 전략보다는 한전된 선택지 중에서 ‘충분히 좋은’ 하나를 고르는 ‘만족화(satisfice)’ 전략이 낫다.
선구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심리학자, 경제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자신의 모든 연구가 ‘사람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한 가지 주제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선택지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와 선택의 잠재적 결과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대안을 두고 최선의 선택을 찾는 ‘최대화maximize’ 전략보다는 한전된 선택지 중에서 ‘충분히 좋은’ 하나를 고르는 ‘만족화(satisfice)’ 전략이 낫다.
그 자신 만족화 전략을 추구했던 사이먼은 선택지를 열어두느라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브랜드 양말만 신었고, 처음 구매한 후로는 매일 신을 양말의 색깔이나 스타일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같은 아침 식사(오트밀 한 그릇, 자몽 반 개, 블랙 커피)를 먹었고 46년간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가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를 야망이 부족했다고 폄하했을지 모른다.
사이먼은 오늘날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한다고 믿었다. “주의력은 희소하며 보존되어야 한다는 설계 원칙은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는 원칙과는 아주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멀티태스킹의 과욕과 불완전 미실행의 반복적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단 하나의 일만 목록에 올린다. 그 하나만 완수해도 그날은 성공적이었다고 여긴다.
끊임없는 알림을 피하려고 휴대폰의 집중 모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 도중엔 휴대폰 전원을 끄고 딴 방에 뒀다. 폰 확인 횟수를 하루 한두 번으로 줄였고, 집중적인 업무가 우선인 날엔 일과 후에만 확인했다. 딴 생각이 일의 집중을 방해할 때마다 그 내용을 노트에 적어뒀다.이런 ‘인지적 아웃소싱’은 미완성 업무가 머릿속에 맴도는 걸 막아 줬다.
누구나 폰을 끄고 띤 방에 둘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업과 상관없이 주의력 뺏는 전환 요소 상당수는 습관의 문제다.
주의력은 양동이와 같다. 가득 차서 지치기 전에 잠시 쉬어 줘야 한다. 앤젤루는 글을 쓰다가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며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곤 했다. 이를 글쓰기에 사용하는 ‘큰 정신’과 단순한 일을 할 때 사용하는 ‘작은 정신’ 사이를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시 쉬며 '작은 정신'으로 단순 활동을 하면 '큰 정신'이 재충전된다. 주의 집중이 길어지면 뇌에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가 축적된다. 지나지면 뇌세포에 독이 되므로 정신적 피로의 일부는 뇌가 그 상태를 막기 위한 활동 감축 과정일 수 있다. 어쨌든 ‘작은 뇌’를 위한 휴식은 지쳐 쓰러지기 전에 집중력 회복하는 데 도움 된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아옌데는 글쓰기에 지치거나 막힐 때면 염주 공예에 몰두하곤 했다.
휴식 위해 소셜 미디어 확인한다면 스크롤링 피하도록 시간 제한 두는 게 좋다. 업무 중 집중력 떨어지는 자연스런 중단 지점 찾아 정신 재정비 기회로 삼는다.
주의 관리 실패의 대가는 더 큰 스트레스, 낮은 생산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업무 수행 능력의 저하다. '큰 정신'에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한 가지 방법, 즉 마감일은 누구나 안다. 듀크 엘링턴은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마감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촉박한 마감일은 우리 사고를 향상시킬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 서둘러 멀티태스킹을 하느냐, 단일 작업에 집중하느냐에 달렸다.
마감일은 또 다른 형태의 ‘약속 장치’일 뿐이다. 아옌데의 자발적 구속의 한 형태다. 단, 아옌데에게 1월 8일은 집중의 마감일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날일 뿐이다. 아옌데는 글쓰기를 신비로운 용어로 묘사할 때가 많다. 마치 저 너머에서 지시받은 것처럼 책이 쏟아져 나온 적이 그동안 두 차례 있다고 했다. 그의 비범한 생산성은 신중하게 조성된 공간, 리듬, 그리고 절제에 달려 있었다. 창작의 진실은 경계 없음이 아니라 경계 짓기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