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자유

새서울도련님
2024-06-23 01:45

즐거운 쫑파티를 하고 와서 지인들과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 호다닥 제출한건데, "당신의 머리 밖 세상" 이야기를 쓰게 되어서 여기에도 남겨둡니다.
(오늘 모임에서 게시판을 편하게 써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호호...)
1시즌 동안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즌을 함께하는 분도 아니신 분들도 언젠가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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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주 3회씩 출근 전에 수영 수업을 듣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이후로 처음으로 수업을 듣는거라, 요즘 수영복은 어떤 것을 사야 하는지, 혹시 내가 모르는 에티켓이 있을까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검색해봤다. 그러고나니 내 유튜브 알고리즘의 일부가 수영으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그 중 재밌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왜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뚱뚱할까?"

안그래도 수영장 고인물 중에 듀공 같은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요는 이러했다. 수영을 배우면 배울 수록 근육이 붙고 요령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힘을 거의 쓰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사실상 운동량이 걷기 수준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걷기가 아니라 달리기를 해야 살을 효과적으로 뺄 수 있듯이, 수영도 점점 속도를 늘려서 운동이 될 만큼 힘들어져야 하는데 다들 그러지 않기에 점점 살이 찐다는 것이다.

악기도 비슷하다. 칠 줄 아는 곡/주법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내가 칠 수 없는 곡을 집중하여 연습해서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실력이 늘게 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물살을 기분 좋게 가를 수 있는 선에서 멈추듯, 자신이 악기를 기분 좋게 연주 할 수 있는 선에서 멈춘다. 그 선의 위치는 각자 다르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고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멈춘다.

책을 읽을 수록 더 많은 종류의 책을 잘 읽어내게 되고, 자연스레 내 생각이 풍요로워 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며칠이었다. 이번 독서모임의 책은 가벼운 제목과 표지와 달리 "철학책"으로 분류된 책이었고,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불편했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읽기라는 행위"를 이어나갔고, 다행히 모든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임에서 사람들과 충분히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경험으로, 평소에 내가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만 계속 읽는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런 책을 잘 읽는 사람이 될 것 같진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소글소글에서 매주하고 있는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걷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고도비만 수준이라 이렇게 꾸준히 쓰기만 해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렇듯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자유는 나 혹은 타인의 고통 끝에 이뤄진다고 느낀다. 나는 이 관점에서 2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뻔하지만 "고통 없이 자유를 획득"하는 요행을 바라고 있지 않은지이다. 그리고 둘째는 "원치 않는 자유를 위한 고통"을 받고 있진 않은지이다. 느리더라도 물살을 가르는 자유면 충분한 듀공들이 있을 것이며, 복잡한 철학책을 통해서 얻어 낼수 있는 종류의 성장을 아예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악기를 배우는 이유가 단순히 내 노래에 반주하기 위해서라면, 힘들게 연주곡을 연습 할 필요도, 믹솔리디안 모드를 알 필요도 없다. 우리는 사회의 통념과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정말 얻고 싶은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 없는 고통이 무엇인지 구별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에 도달하는 길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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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관악구 조지오웰 | 5개월 전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자유는 나 혹은 타인의 고통 끝에서 이뤄진다고 느낀다" 캬.. 많은 생각이 드네요. 가슴에 남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