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척이 다락방에서 자기 죽음을 목격한 후 다짐하듯 되뇌는 장면이었다.
"아무 일 없던 거야. 나의 삶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 모두의 삶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름답고, 그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세계이고, 독립적인 우주'라고 생각하는 척의 신념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영원한 끝에 도달할 것이다. 척은 그것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척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무의 세계라는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죽음을 목격한 순간, 마치 자신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상기하는 듯한 결심 같다.
척은 자신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지금도 사랑해 마지않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렸을 거 같다. 누군가 삶의 경이로움이란 무엇이냐고 척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첫번째로 대답할 만한 순간들일 것이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그러한 순간을 더 많이 경험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졌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터질 듯 밀려오는 환희의 순간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삶의 하이라이트 순간들. 척에게는 아마도 춤과 관련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주방에서 할머니에게 춤을 배웠던 순간. 댄스파티에서 파트너와 함께 완전히 춤에 몰입되었던 순간. 찬 바람을 들이마셔도 벅차오른 황홀함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운동장과 계단을 뛰어다니던 순간. 그러한 경험이 남은 삶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언제가 닥칠 죽음보다 더 큰 삶의 이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척의 대사와 함께 장면이 끝났다. 잠시 마음의 울림이 일었고, 잊고 있던 나의 바람도 일깨워줬다. 하지만 곧이어 나를 반추해 보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척이 공감되는 비슷한 경험, 비슷한 순간이 나에게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이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렬한 자기 존재감을 인식했던 순간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 삼아 어느새 삶의 주도권을 양보한 나의 모습과 척의 태도가 대비되어 다가왔다.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인내심을 기어코 발휘해 다수의 기준에 슬며시 합류한 모습이다. 이제 안도감을 느껴도 되는지 마저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은 걸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다. 긴 줄의 끝에 서서 무언가 막연히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련한 듯 한심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주체적 선택을 포기하는 대가로, 삶의 고유함과 경이로움 대신 평범함과 안전함을 택한 사람들은 어떤 세계를 만들게 될까.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려 애쓴 흔적이 느껴지는 창백한 세계일 거 같다. 북한의 가짜 도시처럼 겉모습은 그럴듯 하지만 고유한 개성과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함이 느껴지는 세계일 거 같다.
자신의 주체적 삶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삶을 고유함과 경이로움보다 안전하고 편한 것으로만 채워가는 거 같아 찔린다. 모든 이의 삶은 아름답다는 상품화된 감상으로 급하게 수습해 보지만 스스로 내버린 주체성의 빈자리가 손쓸 방법 없이 공허하다.
척의 마지막 대사가 조용히 머릿속을 헤집고 나간 후 잠깐의 여운과 감동이 일었고, 이내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비루함이 무겁게 다가왔다. 앞에서 지나간 장면들이 다시금 스쳐 지나갔다. 특히 모두의 삶이 각기 다른 우주이며, 세계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아까와는 다르게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결국 그 개별적이고 고유한 세계를 "너는 어떻게 만들어 갈래?"라고 묻는 말 같았다.
척에게도 나에게도 각자의 우주가 각자에게 주어졌다.
삶은 경이로운 것이라는 자기 확신으로, 주체적인 인생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이 제안하는 패키지 인생을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자신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아쉬움 정도로 기꺼이 수용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사이에 존재하는 거 같다.
무언가 뾰족하게 뚫어내고 거침없이 선택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실제로 나를 막아서는 건 어디에도 없는 거 같지만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낀다. 그리고 막연하게 겁을 먹고 있다.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우주를 자신이 원하는 경이로움으로 채워가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단지 선택과 마음가짐의 문제일까. 어린 척이 다락방 문을 닫으며 되뇌었던 다짐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에게 더 큰 신뢰와 용기를 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그 세계를, 그 우주를 나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그 선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