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랑의 연대가 필요한 순간이다.
2411 시즌 - 책 <1945년 해방 직후사>
2024-12-25 22:37
전체공개
2024년 12월 3일, 평범한 하루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뒤바뀌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의 휘트니스에서 런닝머신을 하며 운동하던 중, TV 화면에 속보가 떴다.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문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거짓말 같았다. 전쟁이 발발한 것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운동을 멈추고,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 채 뉴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비상계엄령 발령 소식에 사무실로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북한군의 침공은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려 하고, 경찰이 국회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을 확인했다. 국회 상공에 떠 있는 헬리콥터,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원들을 잡으러 들어가는 군인의 모습이 이어졌다.
다행히 2시간 만에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의 독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개인의 판단으로 민주주의를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우리는 오랜 투쟁과 희생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세워왔지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는 정병준의 『1945년 해방직후사』 읽고 있다. 1945년도 해방직후 우리나라의 상황과 2024년 12월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대적 배경은 크게 다르지만, 여전히 혼란과 불확실성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해방’은 국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공백과 혼란을 초래했다. 좌우 이념의 대립, 외세(미국과 소련)의 개입, 분단 문제 등으로 인해 국민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기대와 함께 큰 좌절을 겪었다. 국민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지도자들 간의 이념 대립과 권력 쟁탈전은 합보다는 분열이 앞서며, 결과적으로 분단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후 우리는 혼돈의 상황속에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과 국가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해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켰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지만 이러한 사건은 국가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다만 과거와 달리 SNS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본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매스컴을 보면 볼수록 뭔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랑의 부재.
1945년과 2024년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사랑의 부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해방시점에 모든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공통분모는 있었지만 국민에 대한 사랑은 부족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존재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권력을 우위에 선점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을 뿐 국민을 위한 진정한 사랑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선포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었다.
1945년 해방 직후, 많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찾고자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과의 진정한 연대와 사랑이 부족했다. 민중의 목소리는 종종 배제되거나 도구화되었다. 여운형과 김구 선생처럼 민주을 생각하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하려는 이기적 동기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분단과 이념 갈등이 격화되며, 국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외면받았다.
2024년의 지금도 한 사람의 광기어린 권력남용과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고 국민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공동체를 사랑으로 보듬기보다는 갈라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선거권을 자신의 이익과 속한 정당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했다. 국민은 정치적 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보다는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공동체와 함께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가치이자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나와 타인을 잇는 다리여야 한다. 권력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사랑은 구분을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묶는다. 사랑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나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문제 속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사랑의 가능성 때문이다.
사랑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행동과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이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지식인들이나 현대의 지도자들은 사랑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력과 현실적인 전략도 필요했다. 사랑이란 방향을 제시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와 제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하고 국민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다. 국민도 지도자를 신뢰하고 참여하며, 스스로 공동체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상계엄령 발령 소식에 사무실로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북한군의 침공은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려 하고, 경찰이 국회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을 확인했다. 국회 상공에 떠 있는 헬리콥터,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원들을 잡으러 들어가는 군인의 모습이 이어졌다.
다행히 2시간 만에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의 독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개인의 판단으로 민주주의를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우리는 오랜 투쟁과 희생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세워왔지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는 정병준의 『1945년 해방직후사』 읽고 있다. 1945년도 해방직후 우리나라의 상황과 2024년 12월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대적 배경은 크게 다르지만, 여전히 혼란과 불확실성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해방’은 국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공백과 혼란을 초래했다. 좌우 이념의 대립, 외세(미국과 소련)의 개입, 분단 문제 등으로 인해 국민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기대와 함께 큰 좌절을 겪었다. 국민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지도자들 간의 이념 대립과 권력 쟁탈전은 합보다는 분열이 앞서며, 결과적으로 분단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후 우리는 혼돈의 상황속에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과 국가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해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켰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지만 이러한 사건은 국가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다만 과거와 달리 SNS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본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매스컴을 보면 볼수록 뭔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랑의 부재.
1945년과 2024년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사랑의 부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해방시점에 모든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공통분모는 있었지만 국민에 대한 사랑은 부족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존재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권력을 우위에 선점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을 뿐 국민을 위한 진정한 사랑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선포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었다.
1945년 해방 직후, 많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찾고자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과의 진정한 연대와 사랑이 부족했다. 민중의 목소리는 종종 배제되거나 도구화되었다. 여운형과 김구 선생처럼 민주을 생각하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하려는 이기적 동기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분단과 이념 갈등이 격화되며, 국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외면받았다.
2024년의 지금도 한 사람의 광기어린 권력남용과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고 국민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공동체를 사랑으로 보듬기보다는 갈라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선거권을 자신의 이익과 속한 정당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했다. 국민은 정치적 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보다는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공동체와 함께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가치이자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나와 타인을 잇는 다리여야 한다. 권력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사랑은 구분을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묶는다. 사랑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나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문제 속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사랑의 가능성 때문이다.
사랑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행동과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이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지식인들이나 현대의 지도자들은 사랑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력과 현실적인 전략도 필요했다. 사랑이란 방향을 제시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와 제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하고 국민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다. 국민도 지도자를 신뢰하고 참여하며, 스스로 공동체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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