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나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특히 스마트폰과 이를 매개로 하는 소셜미디어들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삶에서 크고 작은 부대낌을 느끼고 있었다. 그 원인이 대략 가늠은 되지만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한켠에 불안감만 커지고 있었다. 이번 책 ⟪경험의 멸종⟫을 읽으면서 그 실체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참에 기술 사용에 있어 주도권을 내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고민하고 싶었다.
-유튜브
웬만한 경험은 모두 데이터화되어 온라인에 전시된 탓에 무엇이든 대리경험을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에 캠핑 다녀오는 일이 그나마 낙이었는데, 일이 바빠서 못 갈 때면 침대에 누워서 유명 캠퍼의 유튜브 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영상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얼음 위에 텐트 치고 자는 것도 같고, 나뭇가지들을 모아 직접 모닥불을 피운 것도 같았다. 해당 유튜버가 다니는 곳은 깔끔한 캠핑장이 아닌, 살짝 오지 같은 곳들이었고 위기와 곤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특유의 긍정마인드로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재미로 한 편 두 편 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틈새 시간’을 메울 만큼 일상 비중이 커졌는데, 그 후로 떠난 캠핑에서 놀라운 사실을 경험했다. 캠핑장에 갈 때부터 도착해서 자리를 세팅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시간을 보내는 내내 머릿속 한 켠에 유튜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나의 방식으로 즐기기보다 유튜버의 방식을 은근슬쩍 따라갔고, 그러다보니 가끔 무리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녀가 빅브라더가 되어 나에게 하나씩 지침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ㅠㅠ
-인스타그램
기술로 매개된 경험의 위험은 생각보다 일상에 촘촘하게 배어있었다. 일부러 스마트폰을 두고 산책을 나섰을 때도 신기한 장면을 마주하면 머릿속에서 소셜미디어에 올릴 문구가 자동으로 울려퍼졌다. 그 상황을 온전히 즐기기보다 기록의 수단으로써 이용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게 있다. 북클럽 오리진 멤버답게(^^;) 관심경제에 완전히 부응하지 않겠다는 것. 홍보용으로 만들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을 나누는 글들만 올리기로 했다. 단발성 사건을 일일이 올리지 않고, 1-2주 정도 지내면서 서사가 쌓이고 의미가 만들어지면 그때 한 편씩 올리기로 방침을 세웠다. 매번 포스팅하는 게 아니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모든 일이 포스팅 거리가 되진 않을지 판단하는 뇌가 하나 더 생기고 말았다. 모든 경험이 데이터화된다는 생각에 완벽히 사로잡힌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이같은 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경험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카카오톡
사용 빈도를 줄이고 싶어도 카카오톡처럼 보편화, 일상화된 것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몇 달 전, 폰에서 카톡을 삭제하고 하루 정해진 시간에만 노트북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카톡 특성상 단답형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기에, 한 번 대화가 시작되면 노트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수시로 노트북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직면했고, 이럴 거면 폰으로 확인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싶었다. 반면 긍정적인 발견도 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는데 카톡으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한자리에 앉아서 친구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를 이것저것 떠올려서 편지를 쓴다. 사진도 몇 개 첨부한다. 즉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 시간 날 때 메시지를 확인하고 시간 날 때 답장을 한다. 톡방을 쭉 훑어보면 꼭 어릴적 쓰던 우정다이어리처럼 느껴져서 따듯해진다. 급한 연락은 서로 전화를 한다.
-’공간’과 ‘장소’
가게를 운영하면서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공유하는 방식의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이 공간을 ‘장소화’하지 못하는 요인임을 실감하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카메라를 꺼내들고, 무언가를 ‘보기도’ 전에 사진부터 찍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의 대화가 녹음될 텐데도 실시간 영상으로 남기고, 그 모든 움직임과 셔터음들 때문에 공간에 머무는 이들까지 불편해지는 상황에 이르면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공간지기가 되니 기술이 바꿔낸 경험의 변화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장소들은 운영하는 이의 세심한 손길과 나름의 철학이 배어있는 것 같다. 소품 하나가 그 자리에 놓이기까지, 메뉴에 안내문 하나가 들어가기까지의 시간과 고민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운영자가 있을 땐 직접 물으면서 공간에 대한 이해가 쌓인다. 그렇게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가 된다. 책의 마지막 장에 기록된 ‘소멸하는 장소, 개인화된 공간’에 깊이 공감했다.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나름 고심해서 틀어놓아도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면 한쪽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고 있는 이들을 발견했을 땐 허망해진다. 같은 공간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운영 중인 곳이 머무르는 공간, 주변과 자연스레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공간을 만들어가려 애쓰는 중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기술 매개 경험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