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 행복 ?

<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독후감

이서연
2025-08-2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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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 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 어느 휴일 허리가 너무 아파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쇼츠나 보며 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던 거다. 이대로 가다가는 말 그대로 식충이가 될 것만 같아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건 안 할 게 분명해서, 눈을 뜨고 운동을 다녀온 뒤 개운한 마음가짐으로 컴퓨터를 켜 저 말을 타자로 치고, 그러면서 내 인생 목표를 매일같이 반복해 적는다. 나는 그날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놓고 해치운 것들에 작대기를 그으며 통쾌함과 뿌듯함을 느끼는(비록 달성률은 50%에 불과할지언정), 그리고 목표한 만큼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더 나은 나를 계획하는, 그런류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첫 시작부터 신기한 책이었다.

일반 사람이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늑대와 함께 살다니… 그 사실 자체도 쇼킹했지만 책 내용 자체는 더더욱 그렇다. 일단 나는 인생에 대해 이 책의 저자만큼 깊은 고민을 하며 살지를 않는다. 물론 늑대를 키울 일도 없겠지만, 행여나 키운다고 하더라도 늑대를 보며 이런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저자는 무려 300페이지 가량을 늑대와 살며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 자체가 나와는 너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글이 비교적 쉽게 읽히는 이유는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해봤을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같다.

행복이란 뭘까? 일단 나로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막연히 누군가가 아주 해맑게 웃고 있는 장면을 떠올릴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행복을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한강뷰 아파트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며 와인 한 잔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순간은 그러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은 단순히 긍정적인 감정도, 목표 달성도 아니다. 행복은 즐겁고 웃음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며, 목표가 꼭 이뤄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누릴 수 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여러모로 저자가 말하는 행복한 순간은 좀 특이하다. 그는 행복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최상의 순간은 고통의 순간이다. 자기를 땅바닥에 메다꽂은 불독에게 저항하며 낮은 신음 소리를 내는 순간, 일평생을 함께 한 늑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잠 한 숨 제대로 청하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 고통스러워 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그러나 그 모든 고통과 절망을 오롯이 느끼며 처절하게 맞서는 순간이 바로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사실 저런 처절한 순간이 나로서는 얼핏 잘 상상이 되지 않긴 한다. 저자의 기준으로 행복했던 순간, 즉 모든 것이 다 실패하고 나 혼자 남겨져 고독과 절망과 억울함과 원망과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자체에 완벽하게 몰입하여 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을 온 몸으로 체감하는 그러한 순간, 그러한 순간이 아직까지 내 인생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내가 그 모든 것들을 직면하며 살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어찌저찌 견디고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내가 그 속에서 행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어쩌면 관념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모든 것이 다 지나고 정리가 된 후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회상하는 감각 같기도 하다. 밤새도록 공부한 뒤 다음날 ‘하얗게 불태웠어…’하며 웃는 그런 느낌이랄까? 박터져라 공부하는 그 순간에는 절대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여러모로 저자의 주장을 백프로 이해하기에는 내 경험과 사고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래도 추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견디고 버티며 자기위로 하는 방식으로는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릴 때 봤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그 모든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내일은 내일의 태앙이 뜰거야’라고 말하던 스칼렛의 희망과 기대에 찬 표정 말이다. 그녀의 표정도 저자의 말대로라면 토끼를 잡지도 못했는데 행복하게 씰룩대며 달려오던 브레넌 같은 표정이었을까? 행복이 실재하는 것이든 관념적인 것이든 간에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모습은 그것이 뿜어내는 생명력 덕분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결국 이 모든 순간을 그 늑대와 같은 마음으로, 복잡한 계산이나 속임수 없이,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 건지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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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A동 부사감 | 14일 전
맞아요. 삶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때 뿜어나오는 생명력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지요. 무엇이 방해하고 가로막는 걸까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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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지혜와 늑대의 지혜를 조화롭게 구현한 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