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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 시즌 - 책 <당신의 머리 밖 세상>
woply
2024-06-12 14:29
전체공개

우리는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마케팅 일을 하는 나는 그 범람하는 홍수에 새로운 향과 컬러의 물을 온 힘을 다해 들이붓고 있다. 이미 시끄럽고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에 차별화라는 이름으로 더 자극적인 소음만 만들어 내고 있는건 아닌지 내심 힘이 빠진다.

현대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나에게도 어색한 침묵을 남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이라는 활동은 아무래도 약자의 공감대보다는 몰려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 패거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자연스럽고 기형적인 구조적 특징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위에서 성공적인 소비 진작을 위해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있다. 반성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마케팅이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물질과 인간의 주객이 뒤바뀐 상황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 소외가 현대 사회의 큰 문제 현상이고, 그 안에서 우리 각자가 극복할 과제를 주체성의 회복으로 본다면 브랜드와 마케팅도 충분히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브랜드와 마케팅이 사람들의 주체성 회복을 도와주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스스로 취향을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주체성에 대한 사유가 부족한 시대다. 나부터가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왜 당연한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거 같다. 주체성이란 무엇인가. 나다움 그리고 그 가치판단에 근거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 생활, 취미, 관계에서 나 스스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그 자체 말이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단순히 소비의 규모를 확장하거나, 억지로 수요를 만들어 내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브랜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상(image)이 될 수 있다. 브랜드는 또 다른 미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나의 세계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마케팅도 이제는 더 싸게, 더 무섭게 겁을 줘서 팔아 치우는 행태를 벗어나, 더 친절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다양성의 세계를 경험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설계에 신경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주체성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잘 맞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택들을 모아가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적 선택지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서 좋지 않은 선택, 자신과 맞지 않는 외부의 가치 판단을 스스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피상적인 정보나 상품화된 정보가 아니라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감각 정보가 필요하다. 모니터를 통해 한정된 인터페이스로 경험하는 세계로는 부족하다. 미묘한 변화와 낯선 오감이 로우데이터로 쏟아져 들어오는 리얼월드에서의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격리한 상태에서 한정되고 추상화된 정보로는 주체성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통해 그동안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가치체계를 다시 의심해 보고, 내가 중심에 설 수 있는 복합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의 방식을 탐구해 봐야 한다.

생각은 머리로만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머리 밖 세상이 주는 다양한 정보가 때로는 사유를 풍요롭게 하고, 판단을 현명하게 만든다. 인간은 그런 능력이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처리되는 엄청난 양의 연산들이 이성적 분석의 영역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감정은 연산의 결과값로 함축적 결론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해지고 몸은 쓰임에 둔해져 지쳐간다. 이때 운동, 샤워, 수작업 만들기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활동을 하면 몸의 리듬이 깨어나면서 되려 머리가 맑아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몇 안 되는 모델로 세상을 뚝 잘라 이해하려 하고, 때론 너무 많이 의존하고, 온갖 좋은 건 다 잊어버린 채 그저 남들과 동화되려 무진장 노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리얼월드에서 얻을 수 있는 복합적인 감각 경험, 직접 경험을 통해 발견한 감정의 관찰, 나다움의 선택을 불안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신뢰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주체성의 방법인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실천에 브랜드와 마케팅을 활용해 보고 싶다. 브랜드 각각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성을 상징한다.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새로운 경험과 구체적 의미 체계로써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치 너무 달라서, 새로워서, 흥미롭고 매력이 넘치는 안 친한 외국인 친구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경험에 귀천과 우선순위를 두는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고, 낯선 감각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자신의 본능적 반응에 귀 기울여보는 마음가짐이 조금 더 나다운 그리고 내가 집중하고 싶은 세계로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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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경비병 | 5개월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케팅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