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철학작가의 매력적인 삶

2403 시즌 - 책 <당신의 머리 밖 세상>
오렌지
2024-06-13 11:05
전체공개


 우리 대부분은 꿈이나 일상, 취향 등 삶 안에 있는 선택지의 결정권자가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혹 내가 '표준범위'와 어긋남이 있는 사고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경험이라도 하면 착각은 자유의지였던걸로 굳어지고는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방송 및 인터넷 문화와 동행한 청년 세대로, 개인의 청각과 시야, 시간을 파고드는 마케팅과 광고가 짜증스러운 동시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광고하는 건 아니지 않나?' 라고 의구심이 든 때가 있었다. 그건 버스의 유리창마다 광고가 붙기 시작할 때였다.

  OTT 서비스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버스에 붙은 스티커 광고는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고개를 올리면 보이는 각도에 맞추어 붙여져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누가 발상을 했는지 기발하네 싶다가 이내 불쾌해졌다. 버스는 이동 수단이지 딱히 즐거워서 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기분이 환기되는 방법이 이따금씩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건데, 해당 광고 스티커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사적으로 잠시 주어진 자유마저 '놓아줄 수 없지!' 하는 심산으로 붙드는 것 같아서 였다. 물론 의자 등 부분이나 버스 천장 부근처럼 기존에 버스 안에도 광고가 많았지만 내 생각에는 투명한 유리창이 광고가 놓인 배경이라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공기, 하늘처럼 그나마 상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 주의집중을 앗아가는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피로함은 꼭 거대 기업이 드론으로 하늘에 특정 제품 광고를 하려다가 조망권 침해로 제지당했다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했다.

 요즘에는 진득하게 공을 들여 품질 좋은 무언가를 개발 혹은 제조해 업으로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어지간한 남의 신제품은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공장과 연구소를 통해서 복제할 수 있고, 저작권 침해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대기업이나 버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사회는 개개인의 삶의 완성도에는 냉담할 만큼 관심이 없는 동시에 기계화를 숭상한다. 사람은 일터에 나가 경력이 쌓이는데 노동 대비 가치가 줄어들고, 삶은 궁핍한데 시선을 빼앗아 돈을 쓰게 하는 곳은 많다. 돈을 받아내는 방식도 일정 기간 무료로 시작한 뒤 사용에 익숙해지면 유료화를 하고, 유료화 해지는 자동 납부 시스템이라 실수로 1개월치라도 결제하게 되기 쉽다. 이처럼 상업이 개인의 부주의함을 고의적으로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선봉에 있는 한국의 상업생태계는 점점 인플루언서와 스타, 눈에 띠는 디자인을 차용한 쉽게 만들고 폐기할 수 있는 제품으로 몰린 뒤 정식 매장도 아닌 팝업스토어와 인터넷 쇼핑몰을 단기간 여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강박에 시달린다. 삶이 위축되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시간을 안달복달하며 보내는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강박은 역시나 정교하게 설계된 광고-디자인에 혹하여 게임이나 유료로 이어지는 정보 습득, 최악의 경우엔 도박까지 치닫는다. 실제 가동법과 상관없지만, 확률을 일정 법칙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도박 중독자의 손에 쥐어진 디자인틱한 화면의 도박 머신은 아날로그 시대의 도박보다 중독에 치닫는 시간과 판돈을 몇 배로 증가시킨다.
 통계는 시간과 금액이라는 정량적인 결과만 남기지만, 실제로는 도박중독자 본인 및 주변까지 연쇄적으로 파괴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휩쓸린 불안의 파도 속에 운 좋게 나는 아직 편안하다고 해도, 언제까지 편안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기력해지기 쉬운 시대에 저자는 몸소 타개책을 마련하는데 그건 바로 전통적인 제조업, 중세시대부터 이어지는 오르간 장인을 만나러 가거나, 스스로 오토바이 정비사가 되는 삶을 꾸리는 것이다. 내가 만든 물건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이해하고, 그 물건의 수명이 100년도 될 수 있다고 인지하며 임하는 작업자는 당연히 물건을 만드는 모든 공정에 세심할 것이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엔 집중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몰입을 이어 만들어낸 가치는 제작자에게 자긍심을 심어 준다. 모든 삶의 대안이 되기엔 장인의 깊이 있고 여유 있는 삶은 외국보다 한국에서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나의 의사인 것처럼 선택을 유도당하고 마는 영악한 현대의 사고 습관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경종을 울리는 책이었다. 

 누군가가 오늘날의 보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기까지 이전 역사에서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촘촘히 탐정처럼 파고드는 이야기법은 막연하게 모두가 알고 싶어함과 동시에 학교나 공기관에서 좀처럼 장려하는 법 없을 책이라 일반적인 루트로는 접근성이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철학사를 한 권으로 담아, 자기 주관 강하게 설파하는 개성 넘치는 이야기라 한 번에 소화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의 진취적이며 철학적인 삶은 대단한 매력을 내뿜는다. 북클럽 이후에도 틈틈히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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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경비병 | 5개월 전

"잠시 주어진 자유마저 '놓아줄 수 없지' " 너무 공감되네요.

오렌지 | 5개월 전

경비병님 감사합니다! 참 마음 편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