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죽음, 촉촉한 죽음

<할매> - 황석영 독후감

황석이형 프로필 황석이형
2026-05-14 21:43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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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년.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이 태어나고 죽는 동안, 군산 하제의 그 팽나무 뿌리는 땅 속 흙을 잘근잘근 씹었겠다. 팽나무는 흙 속 양분을 뿌리부터 끌어올려 제 몸통을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굵게 키우고 옆구리에는 가지를 내고, 가지 위로는 잎을 내고 매년 열매를 떨궜을 테다. 소설 속의 개똥지빠귀, 하루살이, 갯개미취꽃, 몽각스님, 마도요새, 유분도와 유분도 가족, 배춘삼과 배춘삼의 아들의 몸이 숨을 다해 땅에 쓰러질 때 팽나무는 그들의 죽은 몸뚱아리와 사연을 양분으로 매년 열매를 맺고 후세에 나눴다. 육백년, 죽은 몸들이 팽나무를 살찌웠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죽음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새만금 간척으로 군산 갯벌은 말라간다. 조개들은 빗물이 떨어질 때 바닷물인 줄 알고 기어 나와 바다 냄새를 찾아 사력을 다하다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오 리 밖 갯벌에서 죽은 백합의 양분은 이제 팽나무에게는 오억만 리 밖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소설 속 서사 있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 들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긴 사연 뒤에 이들의 몸은 마치 아무도 아니었던 것처럼 풀썩 땅으로 떨어졌다. 육백년 팽나무 앞에서 삶과 죽음의 전환은 밀물과 썰물처럼 빨랐다. 밀물로 들어온 물은 빠져나갈 때 갯벌의 양분을 가지고 바다로 나갔고 다시 밀물로 들어올 때 백합의 숨통을 틔워 냈을 테다. 이런 삶과 죽음의 전환이 살아 있는 것들의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생각되자 내겐 거실의 화병에 꽂아둔 스토크 꽃의 향만 진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끝없는 개발의 탐욕이 이렇게 숙명처럼 이어지는 삶과 죽음 사이에 콘크리트를 붓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 들의 죽음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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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A동 관리인 프로필 A동 관리인 | 25일 전
밀물과 썰물처럼 순환하며 이어지는 삶과 죽음 사이에 콘크리트를 붓고 있다는 표현이 서늘하게 와 닿네요. 길지 않지만 콘크리트처럼 밀도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