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 년 또는 육백 년 그리고 조금 더,의 시간 동안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이 죽고 태어났다. 군산 하제에서 그 팽나무의 뿌리는 땅 속흙을 잘근잘근 씹었을거다. 그 양분으로 몸통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굵어졌을 테고 옆구리는 가지를 뻗고 그 가지는 잎을 내고 떨구었을 테다. 육백 년 팽나무에 개똥지빠귀와 하루살이와 갯개미취 꽃과 몽각스님과 마도요새와, 유분도와 유분도 가족, 배춘삼과 배춘삼의 아들 경순의 죽은 몸의 양분이 있다. 아마 조선 건국 그즈음부터 팽나무는 이 땅 위에서 나고 죽는 이들을 양분 삼아 숨을 쉬고 열매를 떨어뜨렸을 텐데 이제 우리가 사는 마을은, 도시는 다 구획이 나누어졌다. 땅 위와 땅속에 부어지는 시멘트에 우리는 분단된다. 새만금 간척으로 군산 갯벌은 말라가고 조개들은 빗물이 떨어질 때 바닷물인 줄 알고 기어 나와 바다 냄새를 찾아 사력을 다하다 이내 딱딱히 굳는다. 오 리 밖에서 죽은 백합의 양분은 이제 팽나무에게는 오억만 리 밖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소설 속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너무 쉽게 죽을 때 놀랐다. 서사 있는 이들의 삶이 마치 아무 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끝나 버린다. 그 죽음은 이내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다른 삶의 양분이 된다. 육백 년의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의 전환은 아침과 밤보다도 빠르다. 삶이 아무것도 아닌 듯 싶자 나는 별안간 내 삶이 간절해진다. 삼십 년 전 나는 겨우 잘 걷기 시작했을 테고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에 의해 계획 정도는 됐으려나. 삼십 년 흐른 만큼 앞으로 한 번 두 번 더 흐를 때 즈음, 또는 근 미래 내 삶은 끝이 날 수도 있는데, 그때 내 몸도 이다음 육백 년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스러지겠지 싶다.
책을 다 보고 나서야 나는 팽나무를 네이버에 검색했는데, 그날 밤 명상에서 내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떠올랐고, 영화 Shall We Dance의 대사 'Because we need a witness to our lives'까지 떠올랐다. 내 생명과 내 사랑과 내 죽음이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이 아닌 사람과 흙에 기억되길 바라본다.
소설 속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너무 쉽게 죽을 때 놀랐다. 서사 있는 이들의 삶이 마치 아무 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끝나 버린다. 그 죽음은 이내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다른 삶의 양분이 된다. 육백 년의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의 전환은 아침과 밤보다도 빠르다. 삶이 아무것도 아닌 듯 싶자 나는 별안간 내 삶이 간절해진다. 삼십 년 전 나는 겨우 잘 걷기 시작했을 테고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에 의해 계획 정도는 됐으려나. 삼십 년 흐른 만큼 앞으로 한 번 두 번 더 흐를 때 즈음, 또는 근 미래 내 삶은 끝이 날 수도 있는데, 그때 내 몸도 이다음 육백 년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스러지겠지 싶다.
책을 다 보고 나서야 나는 팽나무를 네이버에 검색했는데, 그날 밤 명상에서 내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떠올랐고, 영화 Shall We Dance의 대사 'Because we need a witness to our lives'까지 떠올랐다. 내 생명과 내 사랑과 내 죽음이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이 아닌 사람과 흙에 기억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