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큰딸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서도호 작품전이 볼만하다는 소문에 기대감을 안고 간 길이었다. 딸아이는 이미 두 번째 보는 전시였지만, 엄마를 위해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인터넷 예매가 어려워 무작정 미술관을 찾아 현장 예매 대기 줄에 섰는데, 딸아이가 "내가 서 있을 테니 엄마는 의자에 앉아 있어"라고 했다. 덕분에 현장 예매의 피곤함을 피할 수 있었고, 딸아이의 따뜻한 배려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전시장에서 만난 서도호 작가의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섬세했다. 주제는 바로 ‘집’이었다. 작가는 집을 아주 소중한 공간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집 안에서 마주하는 모든 요소를 지극히 섬세한 작품으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서도호 작가에게 집은 단순히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인 물리적 건물에 그치지 않았다. 스케치에서 시작해 은은한 색의 실크와 나일론 천으로 복원해 낸 문고리, 스위치, 손잡이 하나하나에는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의 온기와 시간,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특히 어릴 적 살던 한옥집 전체에 창호지를 붙여 집의 형태를 그대로 만들어낸 작품 제작 과정은, 작가의 인내심과 상상을 뛰어넘는 창의력의 결실이라 느껴졌다. 얇은 천으로 실물처럼 생생하고 투명하게 표현해 낸 모습을 보며 '가히 천재에 가깝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집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리움이 없다면 과연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고전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서도호 작가에게 ‘집’이 지닌 소중함처럼, 오디세우스에게도 집이란 익숙함과 그리움이 응축된 유일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고전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서도호 작가에게 ‘집’이 지닌 소중함처럼, 오디세우스에게도 집이란 익숙함과 그리움이 응축된 유일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오디세이아》의 21권에서 24권은 오디세우스가 긴 방황 끝에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집 양식을 축내며 행패를 부리던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자신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며, 늙은 아버지까지 다시 만나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여신 칼립소의 섬에 머물 때조차도 매일 바닷가에 앉아 고향 이타카의 집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신이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마다하고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집'. 그것은 서도호 작가가 천으로 써 내려간 작품들처럼, 나의 모든 과거와 서사, 그리고 '나를 나이게 만들어주는' 소중함과 익숙함이 온전히 응축된 안식처였다.
미술관을 나오며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마주할 수 있었던 서도호의 '집',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이타카'. 이번 추석 연휴에 딸과 함께한 시간들 역시 먼 훗날 내 삶을 따뜻하게 지탱해 줄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의 집'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