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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는 무엇보다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뒷세이아(13~20권)> - 호메로스 독후감

호떡 프로필 호떡
2026-10-01 22:30
전체공개
오디세우스가 오랜 고생 끝에 이타카로 돌아와 아들 텔레마코스와 재회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그토록 감격한 이유가 단순히 20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만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극복해야 할 위기가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자기편을 만났다는 사실이 그 감격의 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만난 순간을 보면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디세우스에게 군대가 생긴 것도 아니고, 텔레마코스에게 갑자기 구혼자들을 제압할 힘이나 계략이 생긴 것도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고향 이타카에 돌아왔음에도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 채 거지의 모습으로 숨어 왕궁에 접근해야 했고, 텔레마코스 역시 수많은 구혼자들과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물론 20년 만의 부자 상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감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에는 혈연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20년을 견뎌왔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위험을 극복하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긴 시간을 버텨왔고, 텔레마코스는 아버지가 부재한 집에서 점점 세력을 키워가는 구혼자들을 지켜보며 혼란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침내 마주했다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되찾았다는 의미를 넘어서, 가장 불확실한 순간에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확실한 자기편을 얻었다는 의미가 컸을거 같다.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 우리가 흔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힘이나 좋은 전략, 완벽한 준비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가진 힘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금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지, 누구와 함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또한 사람을 흔든다. 그런 점에서 확실한 자기편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숫자가 더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고, 혼자일 때보다 더 나은 판단과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의 순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힘 그 자체라기보다, 가진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더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의 재회가 서로에게 그토록 큰 감격으로 다가온 이유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사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가족이고 부자지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는 함께 되찾아야 할 것이 분명했고 일치했다. 오디세우스의 왕궁과 이타카의 질서를 되찾고, 자신들의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두 사람을 단순한 가족을 넘어 서로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서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면 각자의 몫을 서로에게 맡길 수 있다. 결국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사람은 단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이해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회 이후 두 사람의 행동이 그러하다. 그들은 감격에만 머물지 않는다. 곧바로 해야 할 일을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준비를 시작한다. 오디세우스는 정체를 감춘 채 사람들과 상황을 살피고, 텔레마코스는 계획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직 구혼자들을 압도할 만한 힘은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바탕으로 하나씩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간다. 이 때 생긴 힘은 단순히 같은 편이 하나 더 생겼으니 힘이 두 배가 되었다는 식의 계산 가능한 힘이 아니다. 서로에게 자신의 몫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행동과 선택이 가능해진 것이다.

보통은 힘을 능력이나 권력, 수적인 우세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에게 결정적인 변화는 그러한 힘을 얻은 순간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기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판단과 위험을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게 준비된 채 맞이하는 위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는 내가 얼마나 강한가만큼이나 누구와 함께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의 재회 장면을 통해 물리적인 힘의 크기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더 큰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더 많은 힘을 갖는 것보다, 같은 방향과 목적을 공유하먀 끝까지 함께할 사람을 얻는 일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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