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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왜 죄가 없을까

<오뒷세이아(21~24권)> - 호메로스 독후감

호떡 프로필 호떡
2026-10-2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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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의 끝에 이르러 들었던 생각은 오뒷세우스의 서사를 상당히 승자의 시선으로만 읽어온 거 같다는 것이었다. 오뒷세우스는 누구인가. 20년의 험난한 방황과 역경을 이기고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이 아닌가. 또 오뒷세우스가 아타카로 돌아와 준비하고 실행한 것은 통쾌하고 정당한 복수극이 아니던가. 그러나 오뒷세우스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거나, 가까운 가족이라면 오뒷세우스를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낄 거 같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오뒷세우스를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무자비한 짓을 거리낌없이 해대는 폭력으로 기억할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귀환은 단순히 아타카로 돌아오는 것을 넘어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질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이타카만으로는 귀환이 충족되지 않는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이 상실한 무형의 질서, 과거에 누렸던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 것이었다. 

오뒷세우스가 되찾고 싶었던 질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질서를 되찾는 방식도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나아가 왜 모든 질서가 오뒷세우스 질서여야 하는가. 선악의 이분법을 쉽게 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들었다. 구혼자들이 상호 존중과 환대의 규율인 크세니아를 악용한 것은 맞다. 오뒷세우스의 입장에서 구혼자들은 자신의 재산과 왕국, 아내까지 탐한 적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을 걸어 잠그고 비무장 상태의 108명의 구혼자를 몰살할만큼의 죄가 맞는지 묻고 싶다. 잔혹한 학살이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말이겠지만, 몰살당한 구혼자들의 가족 관점에에서 오뒷세우스의 몰살 사건은 상상하기도 싫은 기억일 것이다. 오뒷세우스와 구혼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재앙이 된다.

오뒷세우스의 폭력은 정당하며 칭송받아 마땅한 서사고, 구혼자들의 폭력은 죽음으로밖에 해결되지 않을 잘못인가 생각해보니 오뒷세우스의 영웅성은 무엇을 위해 드높여져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황당한 것은 오뒷세우스의 복수극 끝에 분노한 구혼자의 가족에게 강제 평화를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결과과 좋고 오뒷세우스의 질서가 회복되었으니 그 과정의 잔혹한 일들은 신화적으로 허용된다.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에서 각자의 이타카와 질서의 회복이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영웅화되는 것을 범죄라고 배워왔는데 같은 매커니즘을 고전에서는 화려한 영웅담이자 우상의 모습으로 포장하는 것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모두가 치열하게 분투한다. 자신의 질서를 찾기 위해, 원하는 성취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러나 내 세계를 확장하고 지키겠다는 명분이 타인의 세계를 함부로 짓밟을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윤리는 개념이 많이 달랐던 거 같다. 윤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온전히 얻지 못할지라도 인간이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선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오뒷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쟁취를 위한 노력과 타인의 존엄 사이의 균형을 다시금 조율해 본다면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오뒷세이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화해와 연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고전을 통해 화려한 승리에만 감탄을 보내면 되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3천 년 전의 서사시가 남긴 것은 표면적으로는 영웅의 의지와 지략일 수 있지만, 맹목적인 승리 이후에 남겨진 누군가의 공허와 상실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소설 페넬로피아드에서도 그런 면을 말하는 듯싶다. 오뒷세우스의 해피엔딩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주인공이 아니었던 이들의 삶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각기 다른 슬픔과 비극의 결말이 많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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