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가 반복되며, 한없이 겸허해진다 『할매』

<할매> - 황석영 독후감

문집사 프로필 문집사
2026-05-22 23:59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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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거장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눈과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의 묘사가 너무나 아름답고 단어의 쓰임이 수려했다.
정갈한 한정식을 먹으면 속이 편안한 것처럼,
한국어 번역체인 문장이 아닌 원서가 한국어인 문장의 정수를 맛본 기분이다.
 
내용적으로는
수많은 생과 사들이 그림의 수채화 붓자국처럼 겹치고 겹쳐져서 하나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에 둘러쌓인 듯 그 안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인간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며,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일 뿐인 것을.
식물이나 동물의 종마저 작위적으로 인간이 붙였지만.

작중의 인물들은 몸을 움직여 일궈야 하는 삶 앞에서 의연하고 그저 살아간다.
멀리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생활은 감정이 이입되기보다 그저 자연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묘하게 그 지점이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p. 208-209)에 가서는 그간 아름다웠던 자연의 묘사만큼이나
방조제 건설로 인한 자연의 망가짐이 처절하게 그려져 자연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뻘위로 기어 나온 조개들이 천천히 말라 죽어가고 도요새 무리가 쉬지 못해 생명이 끊어졌다.
2024년도에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고 하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p. 35
어느 꽃나무는 한해 동안,
또 어떤 풀은 두해를 나는 게 고작이었다.
풀꽃들은 씨를 퍼뜨린 원래의 것이 죽어도 그 자리에서 씨앗이 다시 싹을 틔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

p. 36
고둥이나 우렁이, 갯지렁이도 뻘흙을 헤치고 가느다란 길을 내며 이동했고,
조개 중의 보배라는 백합, 갯벌 어디서나 나오는 바지락, 가무락조개, 동죽,
그리고 건드리면 물총을 찍 쏘아대는 맛조개 등속이 썰물 나간 모래와 뻘흙에서 나와
이렇게 우리는 살아 있다고 사방에 움직였다.

p. 39
하루살이는 물속에서 세해를 애벌레로 지냈다. 그러고는
방금 밖으로 나와 껍질을 벗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번식하기 위해여 지금부터 몇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그 벌레에게 물속은 한때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알이었을 때부터 그랬고 애벌레가 되어서도 늘 쫒겨 다니기만 했다.
물고기, 올챙이, 개구리, 잠자리 애벌레, 방개, 소금쟁이 모두가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물 밖에 나와서도 형편은 같았다. 잠자리, 거미, 작은 새, 모두 하루살이를 먹으려고 덤볐다.
그런데 정작 하루살이는 입이 없어서 무엇이든 먹을 수가 없었다.
하루살이는 삼년을 물속에서 살다가 껍질을 벗고 물 밖으로 나와 짝을 찾아 교미하고
알을 낳고는 곧 사라진다. 수컷은 짝짓기 직후에 죽어버리고 암컷은 물속에 알을 낳고는 죽는다.
지상의 시간으로 빠르게는 두 시간에서길게는 하루 반쯤 살 수 있었다.

p. 45
팽나무는 서리 내린 늦가을에 이미 꽃은 시들어버리고 줄기까지 말라가던
갯개미취가 스러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어.
갯개미취가 맥없이 허리를 꺽자 팽나무는 대답을 전했다.
괜찮아, 너는 그 자리에 씨를 뿌렸을 테니 봄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건 내가 아니겠지만 나처럼 대해줘.

p. 73
은적사가 큰절은 아니지만 지어진 세월도 천여년이 넘고
인근에 부농들이 많아서 산골 오지의 절보다는 살림이 포실할 듯했다.

p. 92
도요새들은 맹그로브 숲과 갯벌을 왕래하며 하루 종일 먹기만 했다.
가슴과 배에 기름이 차오르고 내장이 가볍게 축소되었을 때
그들은 이동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p. 165
배춘삼은 아들이 우금치 싸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전해 들었다.
그는 줄포의 객줏집을 폐하고 오래전부터 바라던대로
부안에 사두었던 농토를  찾아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하였다.
그의 귀한 손자 성천은 논에서나 밭에서나 농사 잘 짓는 상일꾼으로 자라났다.

p. 175
어쨌든 하제 마을의 작은 팽나무는 몇년 동안 끊임없이
사격을 받았고, 그 자리가 움푹 패고 짓무르고 썩어가더니
죽어버렸다. 나중에 잎 없는 마른 나뭇가지를 쳐들고 서잇던 팽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베었다.
사람 사는 데서 죽은 나무는 흉조라고 했다.

큰 팽나무는 할매 혼자 처음부터 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p. 183
썰물이 남긴 물웅덩이나 시냇물처럼 보이는 갯골에 가면
망둥어들이 얕은 물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망둥어를 본격적으로 잡으려면 썰물 때에 물끝자리까지 나아가서
발목에 물을 담그고 낚시를 드리우면 된다.
물론 멀리 나가기 전에 갯벌에서 뻘흙을 뒤집어 갯지렁이를 여러마리 잡아 깡통에 담았다.
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워 물에 넣으면 잠깐 사이에 손바닥에 느낌이 왔고
그냥 대를 쳐들기만 하면
망둥어가 올라왔다.
가끔은 두마리가 한꺼번에 미끼를 물기도 했다.
미끼를 끼우고, 물에 던져 넣고, 잡아 올리고, 하다보면 너무 잘 잡혀서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새 구럭이 가득찰 정도로 망둥어가 많이 잡혔다.
망둥어는 잡아간 날 얼른 손질해서 매달아놓으면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반건조가 되고
이걸 연탄불에 구워먹으면 소고기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어른들은 회를 치거나 회무침으로 막걸리 안주로 제일이라고 했다.
매운탕도 맛있고 잘게 썰어 채소 넣은 물회도 맛있었다.
동수는 외가에서 지내는 동안 망둥어 잡아다가 양말 빨래 널듯이
장대에 빨래줄 매어 고기를 말려서 심심하면 구워 먹었다.

p.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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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몽각 프로필 몽각 | 18일 전
다 쓰신 건가요? 일부가 잘려 나간 건 아니겠죠? 좀 더 익히고 묵힌 글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문집사 프로필 문집사 | 18일 전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일찍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