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란 마치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인양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고, 완독한 작품도 없다.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최초의 기억은 학창시절 우연히 50년대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의 만남이다. 전체적으로 허무하고 쓸쓸한 느낌의 이 시를 더욱 고양시키는 그 이국적이고도 생소한 이름이라니~ 어쩐지 가을과 무척 어울리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그땐 그 이름이 여성인지도, 작가인지도 몰랐었기 때문에 그 시를 제대로 이해했을리 만무하다. 이번에 이 책을 자세히 읽고 자연스럽게 생긴 호기심으로 그녀의 생애와 작품을 찾아보고 나서 다시 그 시를 낭송해 보았다. 그제서야 고독하고 쓸쓸한 시 속에 등장한 그녀가 제대로 보였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겪은 우리의 젊은 시인과 1차 세계대전을 겪고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가 겹쳐보이면서 시인이 시상 속으로 그녀를 불러들인 까닭이 싯구 하나하나에서 절절하게 읽혀지는 것이었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 당시에 아주 드물던 여자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 위한 이틀 정도의 작가의 고민과 열정이 잘 담겨 있었다. 소설가다운 상상력으로 그 당시 남성들의 전용 공간이던 대학을 합쳐서 가상 대학을 만들어 도서관, 잔디밭, 교회당 출입 등에서 여성들이 당했던 차별을 일깨우고, 대영박물관에서 발견한 남성 작가들의 여성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인 열등성 기록들에 분노하게 해준다. 또한 여러 여성 작가들을 통해 공동거실에서 집필을 할 수 밖에 없던 여성들이 시나 희곡보다는 덜 집중적인 소설이라는 장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여러 여성작가들의 작품과 생애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특별히 가상의 셰익스피어 여동생을 등장시켜 여성들이 방해받지 않고 타오를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과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제시하여 걸작은 외톨이로 태어 나는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임을 증명해 준다.
그녀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비록 현실에서는 차별받는 여성이지만 분노와 편견이 없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의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서 글을 쓰라고 충고한다. 동시에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하므로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그 당시 차별 받던 여대생들에게나 젠더 이슈로 갈라져 싸우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강연 결론의 백미라고 여겨진다.
강연의 주제로 돌아가 보면 그녀는 서두에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작가는 결론적으로 현재(그 당시) 여대가 적어도 두 곳 이상이 있고, 투표권이 생겼으며 재산 소유가 가능하고,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약 이만여명이 된다는 사실을 숙고해 본다면, 기회가 부족하고 훈련이나 격려를 받지 못했으며 여유와 돈이 없어서 글을 못쓴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에 동의를 구한다. 이 부분이 현재의 나에겐 가장 뼈 아프게 들렸다. 그녀가 제시한 최소한의 조건을 얼추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그녀가 내게 다그치고 있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 내 예상처럼 100년 정도가 훨씬 지났는데, 너는 글 한줄 쓰지 못한 채 교차로에 묻힌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 스스로 내던져졌던 육체를 걸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고 글쓰기에 노력하고 있는가!
* 너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 유행하는 테토녀, 에겐남을 미리 알아챈 작가의 예지력에 감탄하며, 이 책이 내겐 건넨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여성이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닌 예술로써 글쓰기를 시작하라.'
전업작가가 아닌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작가에게 약속해 본다.
'예술로써의 글쓰기는 못하더라도 자기표현으로서의 글쓰기라도 당장 시작해 볼게요.'
그나마 북클럽 오리진이 있어서 이렇게 졸작이지만 독후감을 쓰고 공유하고자하니 시대를 앞서간 용기있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진다.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