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오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성당에서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병인박해. 강사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님. 한국 교회사를 4번에 걸쳐 강의하는데 그 마지막 날, 한국 가톨릭 역사상 가장 크고 많은 사람이 박해를 받은, 1866년부터 8년간 지속된 병인박해를 다루었다. 한국 가톨릭은 선교가 아닌 공부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자발적 교회이고 무명의 순교자가 많은 독특한 교회이다. 그 날 밤 이불에 누워 『할매』를 읽는다. 말도 안 돼? 방금 들은 병인박해가 여기서 왜 나와? 새와 바다와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아? 새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바다를 건너 달라는 부탁과 병인박해, 오늘 내가 우리 성당에서 듣고 온 이야기가 여기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심한 듯 쓰였지만 한 자 한 자가 고증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년 넘게 신학과 사학과 천주교사를 공부한 박사 신부님의 이야기가 책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홉명의 선교사와 만 명의 희생자(책): 병인박해 희생자는 5천-8천으로 보고 있는데 기록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일 거라고 1만명까지도 보고 있다고 하셨다. 책에서 신자촌이 옹기를 굽는 마을인 것, 장돌뱅이가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부님은 옹기는 흙을 다 쓰면 그 곳을 떠나야 하는 고된 일이기에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이 옹기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신자촌은 산 속에 숨어 있고 그 사이를 연락하는 연락책은 장돌뱅이가 맡았다. 병인박해 때 선참후계(先斬後啓)-먼저 형을 집행하고 후에 보고하면서 희생자가 많아졌고 같은 날 같은 식구에게 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어겼다. 다만 만 15세 이하는 처벌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그 후손이 남을 수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유 사무엘이 살아남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창고 곁을 돌아가다 말고 사무엘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지붕 위로 올렸다.
여기 꼼짝 말고 엎드려 있거라.” (할매, 135페이지.)
나는 번쩍 들어올려진 사무엘이 되기도 하고, 사무엘을 번쩍 들어올리는 아버지 같기도 하고, 딸들을 챙기는 어머니 같기도 하고, 사무엘이 안 보이지만 아무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아 숨 죽이는 혹시나 내가 실수로 사무엘은? 이라고 말하게 될까 스스로 입을 막는 딸 같기도 하다.(딸의 모습은 내 상상이다.)
박해를 이기고 순교하는 것은 기적으로 본다. 성인에 등극하기 위한 기적 심사에서 순교자는 그 자체로 기적으로 간주되어 기적을 일으켰는지 심사를 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목숨을 걸고 나는 천주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기적이다.
노년의 작가가 얼마나 많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이해하고 소화하여 이 작은 책이 쓰여졌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의 강의가 오늘의 책에 나오는 우연 뿐만 아니라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든 씨앗이 나무가 되고 나무 주위에 사람이 들고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마을에 역사가 쌓이고 역사가 흘러 오늘에 이른다. 인연, 연결, 나와 무관하지 않음, 나는 껍질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나는 연결되어 있고 다행히도 나무가, 자연이, 하늘이, 나를 알고 있다.
100그루. 우리집 아파트 앞 지상주차장을 둘러싼 나무가 100그루다. 소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들이다. 있는지는 알았지만 거기에 그 나무가 있는지, 어떤 수종인지, 얼마나 많은지 무심히 지나쳤다. 월든에 할매, 독서클럽 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멈춰서 사진을 찍어 수종을 확인하고 나무가 몇 그루인지 헤아려본다. 하나, 둘, 이렇게 나무가 많았나? 나무에 이름을 붙이고 오가며 이름을 부르고 고개를 들어 한 번씩 더 쳐다본다. 우리 동 앞에만 100그루, 그런 나무들이 아파트 전체로 보면 1000그루가 넘는다.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다섯 걸음에 나무가 하나씩, 하루 5000걸음을 걸으면 1000그루 나무를 만난다. 우리 동네는 나무가 더 많아서 한 걸음마다 3-4그루가 있다. 내가 하루에 만나는 나무는 1000그루 이상일 것이다. 나무 1000그루, 수라 갯벌에 게가, 짱뚱어가, 조개가 얼마나 많았을까?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 수천만의 생명이 있고, 다시 철새가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 수천만 마리가 다녀갔다. 어떻게 이렇게 무심했을까? 마음을 다잡고 ‘수라’ 영화를 본다. 카페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보고 있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문규현 신부님 삼보일배 후 우는 장면에서는 거의 소리가 밖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동네 카페에서 대부분 이어폰 끼고 자기 음악 듣고 있으니 벽 보고 바다 영상 보는 저 여자 왜 우나 싶다가도 감기 걸려 코 많이 나오다 보다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 다 보고 일어나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이어폰도 끼지 않고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고 계신다. 두 시간을 참아 주셨구나.
비가 온다. 수라 갯벌에 숨 죽이고 바다를 기다리던 조개들이 비가 오니 바다가 들어온 줄 알고 밖으로 나와 입을 벌리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래도 택시 아저씨는 좋은 비라고 한다. 에잇, 귀찮아. 할 수도 있지만 택시 아저씨는 봄의 꽃가루를 싹 정리해 주고 본인이 하시는 작은 텃밭에도 도움이 되는 고마운 비라고 표현한다. 30년 소방관 하고 이제 택시를 하시는, 눈이 어두워 밤에는 운전 잘 안 하시는, 그런 택시 아저씨가 비가 고맙다고 표현하신다. 비, 물, 바다, 나무, 주의깊게 보지 않은 생명들이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 기특하게도 살아서 고맙게도 나도 잊지 않고 미안하게도 나에게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