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는 월든 호수를 감싼, 그 깊은 숲으로 왜 들어갔을까?
“삶의 본질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위해서 였다”라고 그는 말한다. 삶의 본질이란 도대체무엇일까?
자기 본성대로 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살아있음은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걸까? 꼭 숲으로 가야만 했나?
도시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수많은 기준을 주고 거기에 맞춰 살아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다.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되어있다. 소로는 본인의 본인의 영혼을 찾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 정호승 시인 책을 읽다가 봤다. “내가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대구 신천옆 아름다운 시골풍경에서 살았던 그 어린시절 감수성으로 평생의 시를 쓸 수 있다.”
영혼을 찾으려면 감각, 감수성을 찾아야 한다. 신이 준 선물 자연에서 생명력으로 부터 나를 느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난 도시에서 자라서 자연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기억이 매우 빈약하다. 감수성 풍부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 나는 아이를 숲 어린이집에 보냈다. 숲에서 자란 아이는 풀. 벌레 자연과 교감, 오감을 느끼는 법을 나보다 더 잘 안다.
아이가 4학년 때 춘천 책과 인쇄박물관 에 갔다.
“가장 나 다울 수 있을 때는?” 이런 질문의 엽서 글에 답을 적는 코너가 있었다.
“나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해결법을 알아낼 때, 남을 따라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할 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것만 들여다 볼 때, 일상을 나답게 살 때, 나는 나 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나 보다 더 잘 아네. 아이들은 아는 것인데 어른이 되면 모르게 되는건가?
나보다 더 나 다울 때를 잘 적어내는 아이를 보고 놀라웠다.
다음 해에 어느 독립서점을 갔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적기’ 란 코너 에 포스트잇으로 사람들이 붙인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더 잘 했으면”, “더 노력했으면”. 절망 섞인 후회와 자책감,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청년들이 자기자신에게 쓴 속마음을 가득 읽고 한국이 왜 자살공화국이라는지 실감했다. 본인을 자책하는 속마음은 너무 적나라하고 마음 아프다.
우리가 아이 일땐 나다움을, 나의 영혼을 알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 사회 기준에 맞게 길들여지고 거기에 부합할려고 나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듯 하다. 글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기 자책과 후회, 자신을 원망하는 속마음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
사람들은 사회속에서 사느라 바빠서 나를 생각할 겨를 조차 없다. 나를 생각할 겨를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키고 인스타, 유튜브를 보며 남을 궁금해한다. 그러다 남과 비교하고 비참해지고 내가 초라해진다. 싫어진 나를 마주하는 혼자 고독한 시간,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로 가고 카페로 간다. 내가 나로부터 소외되어 진다. 나의 영혼과는 점점 멀어진다. 영혼의 부재로 알멩이가 없는 속빈 강정처럼 점점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숲에 가서 정신을 마주하고 생명력을 되찾아야 한다.
4월 북클럽 오리진 선정 책 ‘월든’을 읽고 숲에 가는 실천을 해야하는데 생각을 하던 찰나에 Yes24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산책’ 이라는 등산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정상에 올라가 책 교환하는 프로그램이 떴다. 산 타는 숙제를 해야되는데 잘됐다 싶어 신청했다. 힘들면 뒤돌아서 내려와 집에 갈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나같이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등산을 간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이 필요한게 아니다. 다 같이 모여 앞산을 올라갔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앞산 정상은 케이블카로만 가봤다. 보통 힘든게 아니였다. 30분을 타면서 너무 힘들어서 되돌아가야 겠다 싶었다. 나 같은 마음으로 참여한 분이 있었는지 한 분은 이미 도망가셨다. 포기하고 중도하차 할까 말까 하는 순간 일행 한분이 “거의 다 왔는데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가면 되!” 이 말에 속아서 30분을 더 올라갔다. 얼떨결에 토끼전망대 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분 말에 속아서 올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 고난이도 가파른 산길을 내가 다 올라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다. 토끼 전망대에서 책교환을 하고 산을 내려와 근처 송재은작가님이 하는 물루서점에 갔다. 서점에서 책을 한권 고르고 펼치자 이런 문구가 나왔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 성경의 팔복에서 말하는 복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었지만, 이는 주로 삶이 끝난 후에 누리는 복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일까?”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고 영혼만 남는다.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너무 놀랍다. 월든을 읽고 물루 책방에 와서 딱 맞는 영혼에 관한 챕터가 나오다니~
점심은 물루서점 바로 옆집 오무라이스 맛집 ‘오무하무’에 가서 어떤 아가씨랑 단둘이 마주하며 오므라이스를 먹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메멘토출판사 마케팅직원 이라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의 ‘메멘토 출판사’ 라니.. 월든, 영혼, 죽음, 메멘토 뭔가 주제랑 다 이어지는 듯 하다.
아까 물루서점에서 익숙한 책을 보았다. ‘책 고르는 책’ 어 이거 내가 읽은 책인데,,근데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는데 이 앞산 산책 이벤트를 기획한 바로 앞에 있는 손민수pd 였다. 책을 읽고도 저자를 만나고도 몰라보다니! 메멘토 아가씨한테 밥먹으면서 나는 얘기했다. 책을 읽게 되면 그 작가를 만날 일이 우연이라도 꼭 생긴다고, 너무 운이 좋다고. 그런데 메멘토 아가씨가 운이 좋다기보다 내가 부지런한거 라고 얘기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랐다. 난 내가 느리고 게으르다고 탓하며 살았는데 내가 부지런하다고? 다시 생각해보니 난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벼락치기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지런하다고 들은 적도 있었다. 갑자기 내 정체성이 느린 사람에서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뀌는 놀라운 사고전환을 했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을 주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객관적인 나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 나를 타자의 시선으로 비춰줘야 나의 다른 모습을 알 수 있다. 남편이 나를 그래프를 그려주며 95%의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정규분포라고 하는데 나는 나머지 앞,뒤 2.5%의 사람들이 정규분포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다고 한다. 난 그건 그냥 하는 소리겠지 남편이 고루한 취향을 가졌으니 그런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그 똑같은 정규분포 그래프까지 나오며 구체적 설명을 보고 깨달았다. 남편말이 맞았다는 것을. 이렇게 나 혼자 소로처럼 숲에 가서 살았으면 나는 정규분포에 속한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특이점이나 차이점을 이렇게 상대가 알려줌으로써 그걸 또 책으로 증거로 다시 봄으로써 인지하지 못했던 나를 인지하게 된다. 그래서 소로도 월든을 떠나 사람들 속으로 다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숲을 찾아갔을 때와 똑같은 이유로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가야 할 삶이 여러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한 가지에만 더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월든>, 맺는말
메멘토 아가씨가 나한테 왜 혼자왔냐고 친구랑 오지 않냐고 묻는다. 책을 좋아하고 등산도 좋아하고 일요일에 시간까지 되는 사람은 주변에 없다고 얘기했다. 그럼 남편이랑 왜 안왔냐고 묻길래 남편은 공놀이를 좋아하지 등산은 안좋아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앞산 전망대까지 올라 갔다온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남편은 니가 앞산을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한다. 공휴일 어린이날 집 앞에 동네 산을 같이 오르자고 한다. 잉! 남편은 산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걸로 아는데. 내가 물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언제든 갈 의향이 있었단다.
중학생 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가기 싫다고 한다. 숲에서 노는 어린이집을 4년을 다녔건만 이제는 나무나 풀보다 게임이 더 재밌고 남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인스타, 유튜브가 더 재밌다. 숲은 관심밖이다.
이 아이도 이제 사회속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많은 경쟁과 좌절을 겪으며 존재감을 인정받으려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겠지? 그렇게 너무 바쁘게 목표만을 쫓아가다보면 주체를 잃어버리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 어느날 문득 집나간 영혼을 알아차리고 공허함을 느껴 정신이 허기져서 생명력이 허기져서 숲을 찾으러 오겠지? 모든 건 겪어봐야 이해할 수 있다. 말과 글로는 아픔, 슬픔, 즐거움, 기쁨, 두려움 오감을 알 수 없기에 아무리 말로 해줘도 못알아듣는다. 아이는 처음부터 스스로 경험으로 깨지면서 과정을 다 겪는다.
몇일전 우편으로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이라고 부모님께 편지쓰기 숙제를 내서 아이가 보낸 것이다.
글속에서 아이는 이미 경쟁속에 있고 힘듦이 느껴진다. 자꾸 화가 나지만 자제하고 노력하겠다고 한다. 이제 본인이 넘어지고 좌절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목표속에 있어도 삶의 목적과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P432 “왜 우리는 이처럼 성공하려고 절망적일 정도로 서두르고 또 그로 인해 절망적인 일들을 저지르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듣는 음악 소리에 따라 걷게 하라. 그 소리가 아무리 신중하고 또 멀리서 울려오더라도, 그가 사과나무나 참나무처럼 빨리 숙성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봄철을 억지로 여름으로 바꾸어 놓아야 할까? 우리 천성에 부합하는 외부 조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대신에 다른 현실을 들이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을 가다가 난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힘들게 푸른 색깔의 유리 하늘을 건설하기로 작정했다고 해보자. 유리 하늘 건설이 끝났을 때, 그 너머 아스라한 곳에서 진정한 푸른 하늘을 보게 되어, 그 유리 하늘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그래도 우리는 유리 하늘을 건설하겠다고 할 것인가?” <월든>
어린이날 남편이랑 둘이 집 앞 숲을 나선다. 월든을 읽고나서 다시 간 숲은 다르게 느껴진다.
알아야 느낄 수 있고 느끼는 만큼 볼 수 있다. 한나무 한나무, 한 꽃 한 꽃, 한 새 한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바퀴 돌고 내려와 교회 앞을 지나는데 현수막 2개가 보인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행복학교 개강>
‘사랑’과 ‘행복’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저 2가지인데 일상에서 사랑과 행복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중학교 베프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많이 배우진 않았지만 하는 말마다 뭔가 진리를 말하는 듯한 현자 같은 친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거라는 거’ 를 알아.”
영혼은 자신을 사랑할 때 찾아온다. 나를 알아야 사랑 할 수 있다.
월든은 자연의 생명력 속으로 들어가 오감으로 감성을 깨우고 느끼며 자신을 알려고 자신과 마주하려고 숲으로 들어간게 아닐까?
왜 도시에서 일상에서는 사랑과 행복이 잘 안되는 걸까? 관계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감정이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요동친다.
스마트폰 등장이후로 유튜브 중독자가 많다. 나도 종종 유튜브에 빠진다. 유튜브중독의 폐혜는 경험과 맥락이 없어져 공감능력이 없어진다. 말도 안되는 짐승보다 못한 범죄들도 하루가 다르게 터진다. 지피티에 질문하고 답변이 나오는 속도만큼이나, 유튜브에서 끝으로 넘겨 결론부터 보는 빠른 속도의 답을 원한다. 빨라지는 속도만큼이나 사람들의 빠른 대응을 원한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분노도 빨라진다. 듣고 생각할 틈이 사라진다. 지피티답변 속도만큼 사람들의 분노속도가 빨라진다. 나도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상한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이 이상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게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무개념인 사람을 몇일전 대응하며 요동치는 감정을 다잡기 힘들었다. 그때 이주열작가와 친분이 있는 지인이 이주열작가와 김미경작가 유튜브링크를 보내왔다.
이주열 작가가 ‘라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스리다’ 라고 한다. 창세기 1장 28절에 “목자가 양을 사랑해서 다스리듯이 자기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서 다스리다.” 라는 뜻이란다.
나를 알아야지만 나를 사랑할 고 다스릴 수 있는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없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 속 도파민 세상으로 빠져드는게 습관이 되었다. 생명력이 있는 숲에 서 나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월든이 숲에 가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나와 다시 사회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관계속에서 사람들과 연결되며 객관적인 자신도 알게되고 사람들과의 연결됨과 경험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Yes24 산책 이벤트로 혼자서는 갈 수 없었던 토끼전망대까지 갈 수 있었다. 내 취향은 아닌 손이 안가는 책인 월든 이란 책을 오리진 북클럽에서 작가님이랑 같이 읽어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 함께 해서 내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등산의 세계, 숲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 이렇게 우린 사람들과 연결되고 관계 맺으며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 한계를 넘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함께 더 멀리 가본다.
손민수pd님이 등산하고 밥까지 사주셨다. 밥 값을 보낸다는데 거절하신다. 후기 남기라고 해서 작가님 책을 사고 yes24산책+월든 콜라보 일석이조 독후감을 썼다. 정말로 본인이 쓴 책 제목 답게 밥도 사주고 등산도 시켜 주신 고마운 분이다. ‘밥보다 등산’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단 책이 너무 예쁘다. 밥보다는 등산이라고 하니 아마 맛집(육체의 영양분) 만 찾아다니지 말고 영혼의 영양분을 찾아 숲으로 가란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