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주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
원문: Avoiding the automation of your heart에서 부분 발췌
Z세대를 정의하는 역설: 주체성이 부족하고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주체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젊은 여성들은 종종 자신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지 강조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실제로는 무력하고 통제 불능인 상태를 감추기 위한 가면처럼.
AI가 초래할 우려도 인간이 창의성을 잃거나 모두가 AI 친구만 갖게 되는 것보다는, 언젠가 우리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챗봇에 확인하지 않고는 자기 생각을 믿지 않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나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까지 외주화하고 있다. AI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행동도 생각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자기 판단을 믿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다.
자동화 시대는 인간의 주체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만든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한 사람의 성취 한계는 대개 그의 지능이었다. 이제 지능을 기계에 맡길 수 있게 됨에 따라 개인의 역량은 외부 지능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좌우된다.
주체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AI는 일종의 증폭기다. 이미 주체적인 이들에게는 더 많은 주체성을 부여하고 부족한 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빼앗을 것이다.
이 ‘마태 효과’는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H.G.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에서 먼 미래의 인류는 몰록과 엘로이라는 두 아종으로 진화한디. 엘로이족은 자동화된 낙원의 삶을 살며, 지하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몰록족이 관리하는 기계 장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몰록족은 수 세대에 걸친 노동으로 자립성을 유지한 반면, 엘로이족은 수 세대에 걸친 무위도식으로 정신이 퇴화해 자신들이 몰록족에게 고기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깊은 사고를 피하도록 설계되었다. 생각은 많은 시간과 칼로리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뇌는 생각을 하기보다 피하려는 기계에 가깝다.
생각을 기피하는 성향의 부작용은 혼자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틈이 나면 생각에 잠기기보다 별 가치 없는 사건 사고 뉴스를 몇 시간이고 끝없이 스크롤하며 시간을 보낸다. 칼 융이 썼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뭐든 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살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되고, 될 수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관점을 넓히거나 신념을 다듬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한다. 주도적인 태도를 잃게 되고, 삶은 당면한 환경에 대한 일련의 반응으로 전락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각을 피하고 덜 할수록 생각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는 점이다. 생각을 피하려고 보내는 모든 스크린 타임은 풍요로운 내면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빈곤해진 상상력으로 인해 우리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외부 자극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생각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한 답은 ‘연습’이다. 생각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극복하려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산업 혁명으로 육체 노동 줄이고 살 수 있게 되자, 건강 유지 위해 따로 시간 내 헬스장에 가는 것이 필수가 됐다. 마찬가지로 AI 혁명으로 정신적 노동 덜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정신을 명민하게 유지하려면 정신적 헬스장에 해당하는 뭔가가 필요하다.
최고의 '두뇌 헬스장'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를 차단하고 자기 생각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특히 일기 쓰기가 효과적이다. 쓰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일기 쓰기 습관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또는 원하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상상력을 키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게 한다. 일기를 쓰는 것은 또한 지속적인 피드백 역할을 하여, 자신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마음에 질서를 가져다줘, 마치 잘 가꿔진 정원처럼, 기회가 닿는 대로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 되게 한다.
이런 글쓰기를 기계에 의지할 수 있을까. 그 목적이 그저 글의 생산이 아니라, 생각을 정제하고 신념을 다듬으며 주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음을 안다면 그럴 순 없다.
원문: Avoiding the automation of your heart에서 부분 발췌
Z세대를 정의하는 역설: 주체성이 부족하고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주체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젊은 여성들은 종종 자신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지 강조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실제로는 무력하고 통제 불능인 상태를 감추기 위한 가면처럼.
AI가 초래할 우려도 인간이 창의성을 잃거나 모두가 AI 친구만 갖게 되는 것보다는, 언젠가 우리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챗봇에 확인하지 않고는 자기 생각을 믿지 않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나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까지 외주화하고 있다. AI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행동도 생각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자기 판단을 믿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다.
자동화 시대는 인간의 주체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만든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한 사람의 성취 한계는 대개 그의 지능이었다. 이제 지능을 기계에 맡길 수 있게 됨에 따라 개인의 역량은 외부 지능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좌우된다.
주체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AI는 일종의 증폭기다. 이미 주체적인 이들에게는 더 많은 주체성을 부여하고 부족한 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빼앗을 것이다.
이 ‘마태 효과’는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H.G.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에서 먼 미래의 인류는 몰록과 엘로이라는 두 아종으로 진화한디. 엘로이족은 자동화된 낙원의 삶을 살며, 지하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몰록족이 관리하는 기계 장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몰록족은 수 세대에 걸친 노동으로 자립성을 유지한 반면, 엘로이족은 수 세대에 걸친 무위도식으로 정신이 퇴화해 자신들이 몰록족에게 고기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깊은 사고를 피하도록 설계되었다. 생각은 많은 시간과 칼로리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뇌는 생각을 하기보다 피하려는 기계에 가깝다.
생각을 기피하는 성향의 부작용은 혼자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틈이 나면 생각에 잠기기보다 별 가치 없는 사건 사고 뉴스를 몇 시간이고 끝없이 스크롤하며 시간을 보낸다. 칼 융이 썼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뭐든 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살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되고, 될 수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관점을 넓히거나 신념을 다듬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한다. 주도적인 태도를 잃게 되고, 삶은 당면한 환경에 대한 일련의 반응으로 전락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각을 피하고 덜 할수록 생각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는 점이다. 생각을 피하려고 보내는 모든 스크린 타임은 풍요로운 내면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빈곤해진 상상력으로 인해 우리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외부 자극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생각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한 답은 ‘연습’이다. 생각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극복하려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산업 혁명으로 육체 노동 줄이고 살 수 있게 되자, 건강 유지 위해 따로 시간 내 헬스장에 가는 것이 필수가 됐다. 마찬가지로 AI 혁명으로 정신적 노동 덜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정신을 명민하게 유지하려면 정신적 헬스장에 해당하는 뭔가가 필요하다.
최고의 '두뇌 헬스장'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를 차단하고 자기 생각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특히 일기 쓰기가 효과적이다. 쓰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일기 쓰기 습관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또는 원하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상상력을 키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게 한다. 일기를 쓰는 것은 또한 지속적인 피드백 역할을 하여, 자신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마음에 질서를 가져다줘, 마치 잘 가꿔진 정원처럼, 기회가 닿는 대로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 되게 한다.
이런 글쓰기를 기계에 의지할 수 있을까. 그 목적이 그저 글의 생산이 아니라, 생각을 정제하고 신념을 다듬으며 주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음을 안다면 그럴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