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여행

더듬이
2025-07-06 09:05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설레게 한다.
기대하게 한다.
준비하게 한다.
점검하게 한다.
집중하게 한다.
이 모든 수고가 이미 확정된 가치 있는 어떤 것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노력이라는 확신이 주는 안정감과 충만감이 좋다.

잘 사는 것의 중요한 요소는 목적을 잘 세우는 것이다.
단/중/장기 목적.
인생 전부를 걸 만한 원대한 목적, 그것에 따라 중기, 단기, 초단기 목적을 끌어내는 식이 좋다.
목적은 원대한 것일수록 불확정적이다. 모호하다. 늘 지금 처한 현실에 맞게 새롭게 번역되고 점검되고 확인되고 재해석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목적이 없으면 밀려드는 대로 살게 된다.
스스로 목적을 세우지 않으면 주어진 목적에 따라 살게 된다.
떠밀리고 쫓겨 살게 된다.

K시에 계시는 선생님을 뵈러 간다.
몇 달 만이다.
몇 주마다 화상으로 뵙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뵈러 가는 길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옛날 선생님의 강의를 기대하며 강의실로 향할 때의 그 풋내기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나는 늘 풋내기이고 싶다.

여행은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방황 같은 여행도 있지만 대개 여행은 목적지, 향하는 곳이 있다.
방랑이나 표류 같은 여행도 목적지가 없는 건 아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 같은 반항적인, 부정적인 목표가 목적지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 원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야심찬 여행이 방랑일 수도 있다.
그런 방랑도 좋다.

서울역 플랫폼에 들어설 때마다 이곳에서 출발했던 여행들이 무작위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내 모습이 겹쳐 떠오르며 내 마음도 그때의 나이로 돌아간다.
(그때의 미숙함과 불안과 동요, 어색함이 그립다.)

특히 기차 여행은 늘 설레고 기분 좋다.
이륙 직후 상승할 때와 지상이 내려다 보일 때까지 잠시 잠깐을 제외하곤 창밖을 내다볼 일이 드문 항공 여행과는 달리,
땅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눈높이에서 가까이부터 멀리까지 끊임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내내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미리 쪄서 뒀다가 싸온 계란과 옥수수, 그리고 갓내린 커피로 오늘 아침의 성찬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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