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다
출근길엔 항상 그렇듯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없어 서있었다. 그러다 내 오른쪽으로 3m 떨어진 곳에 자리가 났는데, 아무튼 멀어서 내 자리는 될 수 없었다. 자리가 비는 순간 앞에 서있던 2명이 움찔했는데 젊은 아가씨와 밀짚모자를 쓴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아가씨에게 앉으라는 양보의 손짓을 보냈다.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그 배려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아가씨는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배려의 손짓을 보지 못했다. 귀는 헤드셋으로 막혀있었고 눈은 스마트폰 게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아가씨 눈 바로 앞에서 다시 한번 손짓을 했다. 또 보지 못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분명 시야 안에서 일어난 일인데 '주변시'마저도 없는 걸까?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아 한 지점에 집중시키는 것처럼 두 눈은 검은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세 번을 무시당한 아주머니는 무안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정말 정말.. 기괴한 경험이었다.
생기롭다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분식집에 들렸다. 순대를 먹는데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흘렀다. 포장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한 여성분이 튀김과 떡볶이를 포장하러 왔다. 사장님께 살갑게 인사하며 생기로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무표정으로 일하던 사장님도 덩달아 웃음꽃이 피었다. 포장을 건네받은 여성분은 사장님의 눈을 마주치며 "더위 조심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나는 그 인사가 너무 정성스럽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많이 파세요" 도 아닌 "더위 조심하세요" 라니.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온도와 습도 그러니까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인사는 더욱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제철 음식이 있듯이 제철 인사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인사를 들으면 우리는 엄연히 육체가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은 검은 화면 속에 있지 않다.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