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젓기

알바트로스
2025-08-07 17:39
오전에는 그런 대로 바람까지 불어 견딜 만했던 날씨가 어느새 폭염으로 바뀌었다.
실내의 에어컨 냉기와 바깥의 열기를 번갈아 오가다 보면 냉방병, 여름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애용하는 운동 기구 중에 노젓기가 있다. 틀림없이 영어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긴 할 텐데 내겐 그냥 노젓기다.
그걸 한 번에 250회씩 한다. 그래 봐야 10분이 안 걸린다. 무엇보다 다른 기구에 비해 무척 재미있다. 정말 배를 타고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다른 운동 기구들도 기계처럼 특정 동작을 반복하게 할 게 아니라 이런 노젓기 방식으로 어떤 재미있는 활동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걸로 만들면 힘든 운동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암튼, 앞으로 뻗었다 뒤로 눕듯이 끌어당기기를 반복할 때는 영락없이 뱃사람이 된다. 영화에서 본 갤리선 아랫 칸의 발 묶인 노예가 아니라, 단독 대서양 횡단이나 세계 일주 성공 같은 해외 뉴스의 주인공으로 뉴스에 나오는 1인 요트 항해사 말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 최신 편에 주인공이 노예로 팔려가 검투사로 체력 단련을 하는 중에 노젓기 기계로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볼 때는 반갑기도 했고, 실제로 그때 그런 기계가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노젓기 운동을 할 때마다 지긋이 눈을 감고 가상의 항해에 나선다.
오늘은 어디로 떠나볼까. 어떤 경로로 해서 갈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한껏 들뜨고 부풀어 오른다.
그동안 배로든 비행기로든 경험해본 모든 바다의 풍경과 해안 도시들을 후보지로 떠올려 보며 금방이라도 그곳에 다시 가 닿을 듯한 기분이 된다.

올 여름 계획했던 휴가 여행이 무산되면서 요 며칠 여행금단증 같은 걸 느낀다.
국내 해안이라도 며칠 갔다 와 볼까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하지만 마감이 임박한 글 숙제가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글이야 여행을 간다고 해서 못 쓸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어서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아, 당분간은 노젓기 항해로 여행 충동을 달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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