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수단과 소명

더듬이
2025-08-10 21:34
나는 열세 살 때부터 조경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세 번의 뜨겁고 긴 여름 내내 잔디를 깎았다. 이후에는 캐디, 해변 방갈로 경비원, 연구원 보조, 지역사회 조직가, 컨설턴트, 교수, 교장, 작가, 비영리 단체 창단 멤버, 그리고 그 외 피정 리더 등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했다. 밥벌이를 했던 직업 목록과 내가 의미를 부여한 소명의 목록은 같지 않다.

돈을 버는 수단은 꽤 자주 바뀌었지만, 내 소명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학습자다. 이는 인생의 빽빽하거나 성긴 모든 시기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한 소명이다. 해변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던 시절에도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알고 싶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나 내 소명은 글을 쓸 때 가장 명료하게 드러났다. 나는 아무 보상도 없이 여러 해 동안 그 일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직업과 소명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노인, 특히 남자들이 퇴직 이후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주요 수입원만이 아니라 (그중 많은 이가 아르바이트나 최저임금을 받는 다른 직업을 찾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있었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추구할 수 있는 소명이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 제시 파머는 존디어 트랙터 회사에서 일하던 전동 공구기사였다. 예순다섯 살에 퇴직을 강요받았을 때, 기계들이 쌓여 있던 일터와 정 든 동료들을 떠나기가 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소명은 트랙터 부품 만들기가 아니었다. 그분의 소명은 원재료를 유용하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었고, 할아버지는 퇴사 이후에도 이 열정을 이어갔다.

출처: 파커 J.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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