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받고 싶은 동기

오렌지
2025-08-11 18:22
 IQ검사, 유전자 검사, 성격성향 검사, 사주, 타로를 위시한 개인 능력이나 마음의 평가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나도 한국 사람답게 남들이 해봤다는 건 자, 타의로 한번씩 거쳐 보는 편이다. 해 본 테스트 중에는 중요하게 참고가 된 것도 있고, 의미 없이 흘러간 것도 있다. 최근에 이런 검사들을 통틀어서 드는 감상이 있다면, 데이터를 취합하여 평균을 내고 이레귤러를 찾아내어 시험자에게 고지한다는 구조의 프로그램은 대단히 돈벌이 하기 좋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뒤떨어진다는 불안을 크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분포도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가 나를 개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평균에 내가 분포하는가, 아니면 평균에 포섭되거나 상충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하면 좋은가라는 '정상성'에 대한 강박을 강화시키는 면이 있다. 어떤 종류의 검사가 난립하고 흥행하는 배경에는 또 다른 약간의 변수만 작용한 새로운 검사-새로운 돈벌이- 제작과 판매 반복의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사람들의 떨어져가는 사회성과 그에 대한 공포를 건드리는 '비언어적 뉘앙스 체크 능력 테스트(얼굴표정 등 시뮬레이션 자료랑 함께)', 나 '경험치 테스트(일상을 만드는 통제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해보면 보통은 따라가는지)' 같은 게 나올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주말에는 친해진 또래 직장동료들과 등산을 갔다. 1시간 코스로 경사가 가파른 절에 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였다. 산뜻하게 아침을 시작한 뒤 하산 후 같이 점심을 먹고 슬슬 산책을 하는데, 동료가 가볍게 고민 상담을 해 왔다.

"제가 최근에 고민이 있는데, 집착이 강한 것 같아요."
"어디에요? 물건에요? 사람에요 아니면 성과에요?"
"이성인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 타로를 봤을 때 제게 집착이 강하다 했거든요. 그땐 흘려 들었는데, 한달 뒤에 사주를 봤더니 똑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있나 하고."
"아~"

 어떤 대답이 최선일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쩐지 바로 그렇다,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근처에 인기가 많은 빵집이 있어서 거기까지 걷는 20분간 다른 신변잡기로 화제를 돌리다가,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요새 옳게 되기보다, 다정하게 되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대답이 정리되어 입을 열었다. 날이 여름날치고 어둑하고 선선해서 긴 말이 오고가도 짜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A씨. 사주도 타로도 근거가 있어서 A씨에게 집착이 강하다라는 표현을 한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죠."

"누군가를 판정하는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의구심을 가지길 바래요. 그래야 자신들에게 돈을 주고 질문을 하러 오니까요. 누군가의 개인성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에게 의존적이 되길 바라는 거예요. 약점을 잡고 의존해 오길 바라는 거죠. 누군가 A씨에게 집착이 강하다, 순진하다 혹은 부정이든 긍정이든 평가를 내린다면 대체적으로 사이비고 개인관계에서는 안 좋은 의도를 가진 거라고 보시면 되요."

"아, 그런건가요? 이성적이시네요."

"아니.. 결론짓는 건 아니지만요.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다라고 이야기 할 때는, 그 이야기 이후의 나를 생각해 주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계라면 이런 질문에는 아니요, A씨 안 그런데요. 라고 깊게 들어오지 않고 넘어갈 거고요. 좀 더 의미를 시도할 만한 관계라면, 아 언제 어느 때 A씨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보통 이러나? 과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줄 거예요. 그리고 애정이 있는 관계라면 어지간한 단점을 단점이라고 느끼지 않고, 등락이 있더라도 A씨의 컨디션이나 주변 상황이 어땠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평정을 찾기를 기다려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거예요."

"그런 뜻이군요~!"

"맞아요. A씨가 집착으로 민형사 처벌을 받아왔던 게 아니라면 구태여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큰 고민 할 필요 없어요. 처벌을 받았다면 두드러지는 단점인 거니까 개선하려고 고민하면 되고요."

 하하! 하고 A씨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도 A씨의 미소를 보면서, 내가 지난 날 남들처럼 해봤던 검사나 남들이 하는 내가 어떻다는 말에 고민해왔던 시간들에 대해서 다시 되짚어 보았다. 
 나는 대체로 같은 말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말에 더 흔들려 왔다는 걸. 그리고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채워지고 싶어 한 시도들이 나의 이레귤러성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테스트였다는 걸.

 누군가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뭐란 말일까? 그 사람은 시기상 사랑을 배우기에 각박한 환경에 처해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 있다면 사랑을 배우고,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믿는 건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그 가능성만이 누군가가 실제로 가진 모든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날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이유가 있고 모르는 내일이 있다는 걸 이해했을 때, 나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와닿았을 때, 나는 아쉽게 지나간 사람들과 시간에 물감 덧칠하듯 사랑을 깃들게 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평균적인 존재가 되는 것 보다, 어떤 면에서 탁월한 존재가 되는 것 보다, 스스로가 어떤 존재이든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원리를 원했었다. 남이 어떤 존재이든 사랑할 수 있는 이해 불가한 마법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쓸모 없어보일 만큼 세상에 넘치는 다양한 평가장에 뛰어들어 갔었다는 게 그 동안, 나와 다른 사람들의 지출과 불안의 무의식에 가까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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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클럽을 쉰 지 반 년이 넘어가네요. 다들 잘 지내시나요?
최근에 경험의 멸종을 읽었는데, 큰 틀에서 책의 의도와 교집합이 있는 독후감이 될 수 있다고 우겨 봅니다.

다음 기회에 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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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듬이 | 8일 전
심리 테스트며 검사며 상담이며 치료는 왜 그리도 많은 걸까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빠진 나르키소스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
오렌지 | 7일 전
안녕하세요 더듬이 님, 자기소신이 있는 사람이 잘 살아나가는 세상 같습니다. 읽어주시고 댓글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북이 | 7일 전
오랜만에 오렌지님 글을 읽으니 좋네요~ ㅎㅎ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렌지 | 7일 전
안녕하세요 거북이 님~! 정말 간만에 써보는 에세이인데 공유할 곳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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