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철저하게 준비한 모임이 가장 아쉬운 모임이 되다

봉천동 조지오웰
2025-08-24 22:09
3년 전 백수인 나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있었다. 다음 모임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었고, 시간이 많았던 나는 철저히 준비해서 멋지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유론> 뿐만 아닌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심지어 '자유' 단어가 제목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까지 읽었고, 그 모든 책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했다. 이번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중 나만큼 준비해올 사람이 있을까? 

모임 전날 병근님에게 발제문을 받은 즉시 모든 발제 하나하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컴퓨터에 빼곡히 정리했다. 준비한 답변에는 <자유론>,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화려하게 버무려져 있었다.

드디어 모임 날이다. 내 앞에는 글자가 빼곡한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 나는 무장되어 있었다. 자 드루와 드루와! 그런데 웬걸? 대화의 흐름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준비해온 말을 갑자기 꺼내놓기에는 너무 생뚱 맞게 느껴졌다. 준비에 힘을 쏟은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일까? 나는 대화의 흐름을 타기보다는 준비해온 말을 언제 할까 타이밍 보는데 급급했다. 앞에 펼쳐진 노트북은 마치 벽을 세워놓은 것처럼 나와 그들을 갈라놓았다. 나는 동떨어져 있었고 점점 위축되어 갔다. 결국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발언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모임에 참여한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어색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내가 준비해 간 것은 너무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했다. 중간에라도 그 밧줄을 놓고 대화의 물살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정성 들여 준비해온 그 밧줄을 놓을 수 없었다. 그저 언제 들어갈까 움찔움찔하며 흘러가는 대화를 바라만 봤다.

댄스 배틀 경험이 무수히 많았던 나는 사실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빈틈없는 준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 배틀에서 선보일 춤을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 갈 수 있다. "A 동작 다음에 B 동작 두 번하고, 다시 A 한 번하고 C 동작 마무리"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배틀에서는 자신이 어떤 음악에 춤출지 전혀 알 수 없다. DJ 마음대로 음악을 틀기 때문이다. 만약 음악을 무시하고 준비한 동작을 순서대로만 한다면 음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춤이 된다. 보는 사람도 딱딱하게 느끼고, 추는 자신도 재미가 없다. 당연히 배틀 결과도 좋지 못하다. 

그래서 그 과정을 어느 정도 겪은 뒤로는 "A 동작을 되도록 넣어야지" 정도만 생각하고 배틀에 임한다. 순서와 세세한 동작들은 정해놓지 않는다. 그냥 그때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음악에 몰입하느라 준비했던 기술은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기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몸은 음악과 하나가 된 것이고, 그런 춤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나, 너,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모임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이 깨달음이 대화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는 발제문에 대한 답을 미리 써가지 않는다. 키워드 정도만 생각해 놓는다. 준비한 키워드를 말하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괜찮다, 그냥 모임이 시작되면 음악에 몸을 맡기듯 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려 노력한다. 대화에 스며들며 '나'보다 확장된 '우리'가 된다. 그런 대화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나, 너,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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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듬이 | 11일 전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대화에 스며들고 함께 흐름을 탈 때의 그 기분. 교감. 마주 보는 서로의 살아 있는 생각이 말로 나와 교차하면서 합쳐졌다 갈라졌다 흩어졌다 다시 합쳐졌다 하는 중에 우리는 각자의 개성과 함께 공통된 무언가를 또 확인하지요. 재즈 연주가 그렇다던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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