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모리
2025-03-26 08:31

출판사 중에 마음산책이라는 곳이 있다.
마음이 산책하는 곳이 책이란 뜻일까.
마음의 산책이 독서라는 뜻일까.
설마 마음을 산(=사로잡은) 책이란 뜻은 아니겠지. ^^
어쨌든 좋은 이름 같다.
독서는 마음이 하는 일이고, 산책이라는 활동과 닮은 점이 많으니까.
산책은 참 좋은 활동이다. 할 때마다 느낀다.
산책이라고 하면 우선 기분부터 느긋하다.
시간에 맞춰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어서 쫓기지 않는다.
그날 체력이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서 더 늘일 수도 있고, 알아서 끝낼 수도 있다.
또 산책은 여행과 달리 사전 계획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다.
매일 혹은 정기적으로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할 수도 있고, 기분이 내키거나 필요할 때 즉흥적으로 할 수도 있다.
특별히 짐을 꾸릴 필요도 없고, 애써 복장을 갖춰야 할 필요도 없다.
걷기에 지장이 없는 상태이기만 하면 된다.
가벼운 운동화에 츄리닝, 경우에 따라 모자 하나 눌러 쓰고 문밖을 나서기만 해도 된다.
산책은 어떤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아서 좋다.
목표점이 주는 강박에서 벗어나 걷는 내내 주변을 또 과정을 즐기게 된다.
같은 코스여도 오늘은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장면을 보게 될까 소소한 기대가 따라 붙는다.
그런 사소한 기대와 흥분과 즐거움이 뒤섞여 살짝 기분을 들뜨게 하는 것도 좋다.
강쥐들이 그렇게나 산책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기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중에 딱히 예기치 않은 장면을 보지는 못하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평정을 더하기도 한다.
산책은 또 가끔은 옆길로 샐 수 있어서 좋다.
옆길로 샐 수 있으려면 길 중간 중간에 그런 분기점이 있어야 한다.
오늘은 이 길로, 다음엔 저 길로, 다음엔 또 다른 조합으로..
산책이 목적지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최종 목적지는 있다. 집이다.
걸음이 아무리 늘어져도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런 여정이 마음의 평안과 자족감을 준다.
마치 멀리 여행을 갔다가, 그 여행이 아무리 즐거웠어도, 집으로 돌아올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깊은 안도감 같은 것이 있지 않나.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말한 산책 중의 마음 상태를 좋은 책을 읽을 때도 그대로 느낀다.
그러니 마음산책이라는 이름, 잘 지은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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