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인공지능 시대의 지혜

더듬이
2025-10-03 21:11
*오늘 서로 연결이 되는 몇 편의 글을 갈무리해 이곳에 올린다.

지식과 기술이 증가함에 따라 지혜는 더욱더 많이 필요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지식과 기술의 증가가 우리의 목적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므로, 만일 우리의 목적들이 현명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바로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지혜를 필요로 한다. 만일 지식이 계속 증가한다면, 미래 세계는 지혜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는가> 중 '지식과 지혜' 중에서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사회과학자와 언론인, 논평가,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한 것을 설명하려 애써왔다. 그 원인의 표준적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1.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2. 사회적 지위를 잃어가는 집단의 인종주의와 지역주의, 종교적 편협성
  3. 교육 수준과 거주지로 사람을 나누게 된 광범위한 사회학적 변화와 엘리트와 전문가 지배에 대한 반감
  4. 도널드 트럼프 같은 개별 선동가들의 특별한 재능
  5. 주류 정당이 성장, 일자리, 안보,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한 실정
  6. 진보 좌파의 문화적 의제에 대한 반감 또는 증오
  7. 진보 좌파의 지도력 실패
  8. 인간 본성의 폭력성과 증오, 배제 성향.
  9.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나 자신도 이 분야 연구에 기여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9번 원인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기여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지난 10년 가까이 이 문제를 숙고한 끝에, 나는 기술 전반과 특히 인터넷이 지금의 특정 시기에 포퓰리즘이 부상한 것과, 특정한 형태를 취한 것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설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이 처음 민영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반겼다. 누구나 스스로 발행인이 되어 온라인에서 원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정보의 품질을 통제하던 기존의 모든 필터는 사라졌다. 이 시기 각종 기관에 대한 광범위한 신뢰 상실이 일어났고 악순환에 빠졌다.
온라인으로의 이동은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지닌 평행 우주를 창출했지만, 다른 경우에는 완전히 반대로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과학 저널, 기자의 책임에 관한 기준을 가진 전통 미디어, 법원과 법적 증거 개시 절차, 교육 기관 및 연구 기관들에 의해 ‘진실'이 불완전하게나마 인증을 받았지만, 이제 진실의 기준은 특정 게시물이 얻은 '좋아요'와 '공유’의 수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상업적 이기심을 추구하는 대형 기술 플랫폼들은 선정주의와 파괴적 콘텐츠를 보상하는 생태계를 조성했고, 이들의 추천 알고리즘 또한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작동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결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출처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게다가 밈과 저질 콘텐츠의 확산 속도는 극적으로 증가했으며, 특정 정보의 도달 범위 또한 확대되었다. 과거 주요 신문이나 잡지는 대개 특정 지역에서 일정 수의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개별 인플루언서는 지리적 제약 없이 수억 명의 팔로워에게 다가갈 수 있다.
온라인 게시물에는 극단적 견해와 자료의 확산을 설명하는 내재적 역학이 존재한다. 인플루언서들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선정적인 콘텐츠를 추구하게 된다. 인터넷의 화폐는 사람들의 '주의'이며, 냉정하고 성찰적이며 유익하고 신중한 태도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2025년 10월 2일자 블로그, '바보야, 문제는 인터넷이야' 중에서

인터넷의 부상과 더불어 인류 사회는 문화적 재화의 과잉 생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물질적 재화의 과잉 생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그것의 불평등 분배는 여전히 문제이지만.) 이런 새로운 환경 속에서 우리 시선이 어떻게 해서 인간의 의도에 따라 특정 단편물들에 빼앗기고 고정되는가 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에서 가장 급박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는 인간 정신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세계를 헤쳐 나가는지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저스틴 스미스-뤼우 <인터넷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2022) 중에서

우리는 정보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손쉽게 접근 가능한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분별력, 의사소통 능력, 공감 능력은 부족하다.
인지과학자인 나는 정보 과잉의 부정적 결과를 연구해왔다. 우리는 끊임없는 알림, 업데이트, 통보에 시달리며 지속적인 정보 과부하 상태에 놓여 있다. 연구에 따르면 동시에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의 인지적 부담은 특히 우리가 그 주제에 전문가가 아닐 때, 우리 뇌와 수행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트머스 대학 총장으로서 나는 4년간의 기숙형 대학 경험이 인간적 자질을 함양하는 가장 강력한 인간 환경 중 하나임을 가까이서 봐 왔다.
우리는 세상을 형성하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시험하며 토론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간을 창조하고 찾아야 한다. 대면 학습과 세대 간 의견 교환이 특징인 소규모 수업을 이끄는 교수진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최고의 교수진은 학생들에게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품는 법, 자신과 다른 관점의 장점을 논증하는 법, 복잡한 세상을 의미 있게 이해하는 법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아직도 해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학생들은 이런 대화를 식당이나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이어가며, 온라인에서 흔히 접하는 ‘좋아요’, ‘RT’, 익명 댓글 같은 방해 없이 토론을 계속한다.
대학의 목표는 비판적 사고, 감성 지능, 윤리적 판단력, 협력적 리더십과 같은 인간 고유의 핵심 역량을 전수하고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성공적이고 행복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역량은 연습이 필요하다. 현재 학생들에겐 이런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팬데믹은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입학을 앞둔 세대에게 사회적 발달의 중요한 단계의 필수 요소인 대면 대화를 막았고, 소셜 미디어는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이제 생성형 AI는 실시간 인간적 교류를 완전히 배제할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몇 년 전만 해도 대인 관계 갈등이 생긴 학생들은 상담 교수의 연구실로 직접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만두고 서로 문자만 주고받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문자 교환마저 사라지고, 갈등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남기는 긴 음성 메모로 이어지고 있다. 상호작용도, 주고받음도 없다. 관계를 회복할 가장 확실한 방법인 직접적인 인간 대화가 사라진 것이다.
차이를 넘어 경청할 기술과 의지가 없다면 젊은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더 쉽게 조종당하며,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준비가 덜 될 위험에 처한다. 대학에서 이런 실천을 배우지 못한다면, 평생 배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단순히 대화의 부재가 아니라 심화되는 양극화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타자'로 폄하하는 행위는 신뢰를 훼손하고, 대화를 시도하거나 상대 진영과 교류하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린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이러한 고립은 눈에 띄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생들이 알고리즘으로 선별된 피드나 자신의 가정과 최악의 충동마저 정당화해주는 인공지능 도구에 빠져들 때 분열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기계는 실제든 지각된 것이든 편향을 확증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여기에 도전하는 데는 서툴다. 우리는 이 어려운 작업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 정보 거품을 벗어나 키보드 뒤가 아닌 직접 만나 서로 교류해야 한다. 
나는 기술 낙관론자다. 1학년 학생들의 글쓰기를 교실에서 AI로 시범 운영 중이다. 교수진은 AI를 도발적인 협력자로 활용하며 아이디어를 번역하고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며 예상치 못한 연결점을 발견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파괴적이고 변혁적이라 해도, 우리의 미래 모습은 기계가 아닌 우리가 그들을 사용하는 지혜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AI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는 대학 환경에서 우리가 탁월하게 준비된 일, 즉 인간다움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동시에 집중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수업이 시작되기 전, 모든 신입생은 선배가 이끄는 하이킹, 카누, 캠핑 여행에 참여한다. 교수진 없이 1,200명의 학생이 숲속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대학 총장에게 밤마다 걱정을 안긴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휴대폰도, 어른도 없이, 단지 동료들끼리 대화하고, 생각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연결되는 법을 배우는 경험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 전통은 공동체가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수십 년 전 졸업한 동문들로부터도 꾸준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이 여행에서 시작된 우정이 평생의 관계로 이어져 오늘날의 그들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가속화되고 우리 주변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 고등교육은 인간 중심의 사명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차세대가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시안 리 베일록 다터머스대학 총장/인지과학자,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애틀랜틱 2025년 9월 19일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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