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등반을 해본 적은 없다. 실내 연습장을 몇 번 본 적은 있다. 요즘은 피트니스 센터에도 한구석의 벽을 그런 구조물로 꾸며 놓은 것을 본다. 벽을 형형색색으로 어지럽게 수놓은 홀드들. 어지럽다고 적었지만, 사실은 외벽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겉보기엔 아무렇게나 흩뿌린 듯 점점이 박아 놓은 작은 고정물에 불과하지만 벽을 타는 사람에게는 적지 적소에 자리 잡고 있다가 적시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도우미와도 같다. 오를 때는 손잡이가 되었다가 내려올 땐 발판이 되었다가 한다.
책을 읽다가도 그 비슷한 체험을 종종 한다.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가지를 뻗어 또 다른 궁금증이 이는데, 주변을 살피다 보면 (많은 경우 읽고 있는 책 속에) 반드시 또 다른 어떤 책이 지금 나의 호출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지금의 나를 예상하고 써 두었을 리는 없다. 언젠가 글을 써 내려 갈 때 막연하게 믿고 상상했던 그 독자의 자리에 내가 지금 들어선 것일 뿐일 터. 그의 책은 나의 든든한 홀드가 된다.
여러 책 중에서 지금 어느 걸 먼저 읽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는 종종 있어도, 읽을 책이 없거나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적이 없는 것은 책의 세계가 저 암벽 등반에 촘촘히 박혀 있는 홀드들과도 같기 때문이다.
갈수록 세상이 더욱 더 포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가는 것 같아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책으로 면면히 또 도도하게 전해지는 현인들의 지혜의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믿음은 믿는 사람의 믿음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잠재적 전달자가 되는 것처럼, 지혜는 깨닫고 믿는 사람의 행동을 통해 생명을 이어갈 뿐이다.
책을 읽다가도 그 비슷한 체험을 종종 한다.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가지를 뻗어 또 다른 궁금증이 이는데, 주변을 살피다 보면 (많은 경우 읽고 있는 책 속에) 반드시 또 다른 어떤 책이 지금 나의 호출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지금의 나를 예상하고 써 두었을 리는 없다. 언젠가 글을 써 내려 갈 때 막연하게 믿고 상상했던 그 독자의 자리에 내가 지금 들어선 것일 뿐일 터. 그의 책은 나의 든든한 홀드가 된다.
여러 책 중에서 지금 어느 걸 먼저 읽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는 종종 있어도, 읽을 책이 없거나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적이 없는 것은 책의 세계가 저 암벽 등반에 촘촘히 박혀 있는 홀드들과도 같기 때문이다.
갈수록 세상이 더욱 더 포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가는 것 같아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책으로 면면히 또 도도하게 전해지는 현인들의 지혜의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믿음은 믿는 사람의 믿음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잠재적 전달자가 되는 것처럼, 지혜는 깨닫고 믿는 사람의 행동을 통해 생명을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