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거울

더듬이
2025-04-03 19:19

마거릿 애트우드는 열여섯 살 때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 문득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느날 프로야구 개막전 때 야구장에서 응원하던 선수가 2루타를 치고 나가는 것을 보던 순간 불현듯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니, 애트우드의 말이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는다. 작가란, 예술가란 그런 종의 인간이다.
애트우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 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고,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거예요.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지요. 내가 비작가에서 작가로 바뀐 것은 B급 영화에서 유순한 은행원이 송곳니 뾰족한 괴물로 변신하는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누군가 목격했다면 내가 쥐를 거대 괴물로 변신시키거나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화학물질 또는 우주광선 같은 것에 노출된 거라 믿을 만큼요. 그땐 내게 막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각할 만큼 아직 머리가 여물지 않았을 때였지요. 혹여 작가의 삶이나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읽어보았다면, 방금 전 내 안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변화를 숨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구내식당에서 도시락을 함께 먹던 여자애들에게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혀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지요. 그중 한 명은 나중에 그렇게 선언을 하는 내 모습이 정말 용감해 보였다고, 정말 배짱 두둑해 보였다고 말해주더군요. 하지만 사실 나는 그냥 무지했을 뿐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글쓰기에 대하여> 중에서

그는 같은 책 다른 곳에서 이런 말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은 품고 있거든요. 즉,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만한 경험을 하고 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작가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건 아닙니다."

정신은 뭉쳤다 흩어졌다, 들떴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때로는 종잡을 수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런 정신을 모으고 가다듬는 좋은 방법이 좋은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이다. 그럴 때 정신은 어떤 형태를 갖추려고 한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을 영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읽고 특히 쓰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가꾸고 돌보는 일이 된다. (영혼의 고유한 품성이 영성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에 주인공 고양이 외에도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개중에 긴 여우원숭이도 나온다. 얘들은 무슨 욕심에선지 아니면 호기심에선지 먹을 것도 아닌 무언가 인공물(주로 인간이 만든 그릇, 병, 장신구)들을 주섬주섬 잘도 모은다. 그중에 빛나는 손거울이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방 신기해 한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어느 나라든 박물관에 가보면 고대 유물 전사관에 칼이나 손도끼 같은 무기와 함께 거의 틀림없이 (청동) 거울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본다. 일찍부터 집단의 생존을 위해 금속으로 무기를 만들었던 시대에 거울도 못지않게 귀중하게 여겼다는 방증이겠다. 왜 하필 거울이 그런 지위를 누렸을까.

거울은 자신을 비춰보는 물건이다. 지배 계층이 그만큼 자기 용모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뜻도 되지만, 그것을 들여다 보는 중에 인간의 자의식도 발달된 것은 아닐까. 자신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얼마간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전쟁에서 승리도 당연히 중요했겠지만 그 승리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가끔은 해보지 않았을까. 거울을 가까이에 두고 보며 자신의 외모만 가꾸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까지 돌보게 되는 마음의 창 역할을 아주 가끔은 하지 않았을까.

어느 때부터 인간은 그냥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밖의 것만 경쟁적으로 좇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해서 만들어 가려는 존재로 변해간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도 안 그런 사람도 많지만) 거울은, 그리고 글은 그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을 비춰주는 손거울 대신, 다른 것들을 중계해주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조지 손더스는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우리 정신의 깊고 정직한 부분은 읽고 쓰기에 의해 날카롭게 다듬어진다"고 썼다.
내게도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이란 내 영혼이 거울을 비춰보며 자신을 보살피고 다듬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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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레오나르도빚갚으리오 | 9시간 전

요 글을 읽고 이 게시판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힌트가 되고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앞장서서 게시판을 멋들어진 글들로 꾸려나가주시는 더듬이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