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위한 방 배정
2025-04-04 19:11
오늘의 발견에 글을 쓰도록 독려하시는 메세지를 받고, 골똘히 생각해보았답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에 대해서 말이지요.
대개는 이런 경우에 '하지 않을 이유는 정말 많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무언가를 안 하려면 이유를 대는 건 너무 편한데, 딱 하나 해야하는 이유가 뚜렷할 때 행동을 하기 쉬워진다'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더군요. 글을 쓰는 게 분명히 좋은 이유는 여러개가 있고, 심지어 전적으로 동의하는 데다가, 개인적으로는 추구하는 방향성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왜 글을 쓰지 않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단순했습니다. '글감'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혼잣말처럼 쓰기 위한 글감은 제게도 여럿 있기야 합니다.
평소의 고민이라던지, 요즘 본 것들에 대한 감상... 그런 것들만 쓰기에도 충분하겠으나 주저되는 부분은 '같이 읽을만한 글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혼자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독백처럼 끄적이는 것에만 익숙하다보니 누가 읽을만한 글을 쓰려면 너무 내면에 대한 것보다는 글감이 될 만한 포인트들을 새로이 발견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쓰는 글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걸까요? 아마 혼자만의 글인 덕택에 안심하고 지나치게 날 것의 표현들을 사용하다 보니 어떨 때는 말도 안되게 비관적이어도 괜찮고 어떤 때에는 분노나 짜증으로 가득 차있어도 괜찮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도 같이 나누는 데에 의의가 있다면 있기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SNS를 자주 하다보면 마치 모두가 공개된 일기장에 자신의 날 것들을 마구 적어둔 것 처럼 느낄 때 지독하게 피로감을 얻게 되곤 합니다. 감정이 전염되기 때문인데, 특히나 준비도 없이 타인의 감정들을 접하게 되는 탓이겠지요. 글을 나눈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을 갈무리하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글을 적는 사람의 관점이 주가 되는 동시에 '읽을 사람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까'를 염두에 두게 되어, 어떤 허상의 감시자 같은 역할이 글을 쓸 때에 곁을 지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주절거리곤 하던 머릿속의 생각의 방 옆에, 모두와 나눌만 한 '글감의 방'을 새로 배정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여기고 나니 또 새롭게 사사로운 다양한 것들이 전부 글감이 되기도 하더군요. 어찌보면 '말을 정제하고 나를 가다듬을 마음가짐'이 글짓기의 핵심 준비물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에 대해서 말이지요.
대개는 이런 경우에 '하지 않을 이유는 정말 많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무언가를 안 하려면 이유를 대는 건 너무 편한데, 딱 하나 해야하는 이유가 뚜렷할 때 행동을 하기 쉬워진다'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더군요. 글을 쓰는 게 분명히 좋은 이유는 여러개가 있고, 심지어 전적으로 동의하는 데다가, 개인적으로는 추구하는 방향성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왜 글을 쓰지 않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단순했습니다. '글감'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혼잣말처럼 쓰기 위한 글감은 제게도 여럿 있기야 합니다.
평소의 고민이라던지, 요즘 본 것들에 대한 감상... 그런 것들만 쓰기에도 충분하겠으나 주저되는 부분은 '같이 읽을만한 글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혼자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독백처럼 끄적이는 것에만 익숙하다보니 누가 읽을만한 글을 쓰려면 너무 내면에 대한 것보다는 글감이 될 만한 포인트들을 새로이 발견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쓰는 글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걸까요? 아마 혼자만의 글인 덕택에 안심하고 지나치게 날 것의 표현들을 사용하다 보니 어떨 때는 말도 안되게 비관적이어도 괜찮고 어떤 때에는 분노나 짜증으로 가득 차있어도 괜찮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도 같이 나누는 데에 의의가 있다면 있기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SNS를 자주 하다보면 마치 모두가 공개된 일기장에 자신의 날 것들을 마구 적어둔 것 처럼 느낄 때 지독하게 피로감을 얻게 되곤 합니다. 감정이 전염되기 때문인데, 특히나 준비도 없이 타인의 감정들을 접하게 되는 탓이겠지요. 글을 나눈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을 갈무리하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글을 적는 사람의 관점이 주가 되는 동시에 '읽을 사람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까'를 염두에 두게 되어, 어떤 허상의 감시자 같은 역할이 글을 쓸 때에 곁을 지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주절거리곤 하던 머릿속의 생각의 방 옆에, 모두와 나눌만 한 '글감의 방'을 새로 배정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여기고 나니 또 새롭게 사사로운 다양한 것들이 전부 글감이 되기도 하더군요. 어찌보면 '말을 정제하고 나를 가다듬을 마음가짐'이 글짓기의 핵심 준비물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읽을 사람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까'라는 '어떤 허상의 감시자'가 곁을 지키게 된다는 말에 공감해요. 다만 '감시자'라는 말은 마치 '검열관'처럼 좀 섬뜩하게 다가오는데, '다정한 관전자' 정도로 생각하면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암튼 그 무엇이 되었든 그 무엇이 글을 쓰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어딘가로 옮겨놓는 것 같아요. 글은 읽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이전에 쓰는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지요. 어쩌면 글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를 글의 질서 속으로 동화시키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 글의 질서란 게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관전자라고 생각하면 확연히 어조가 부드러워지네요! 어떻게 써야만 글이 정돈된다는 공식에 집중하는 것도 아닌데, 통하기 위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자연스레 질서를 지향하려 하게 되는 감각이 독특한 것 같습니다. 어디로 옮겨지는지도 모르는 채 어떤 글을 다 적고 나면 마치 내 안에 그 글의 정서가 그제서야 스며들게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감동적인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