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듬이'냐고 묻는다면: 만원 지하철 안 그 더듬이가 아니라

더듬이
2025-03-18 09:16

3월 중순에 대설이라니. 창 너머 하늘이 온통 희뿌옇다. 아파트, 건물 옥상과 지붕 위는 누가 물감으로 덧칠이라도 해놓은 듯 도다라지게 새하얗다.
이런 장면을 보면 강원도 철원이 떠오른다. 두루미와 기러기가 잠을 자는 토고 저수지의 설경도 눈에 선하다. 지금쯤이면 걔네도 다 고향으로 떠났겠지. 훨훨 시베리아 평원을 향해 열심히 날아가고 있을까. 휴전선 넘어 북한 어디쯤에서 다시 쉬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걔네도 기후변화에 맞춰 아예 북상을 늦췄을까.
이 아침, 이런 생각에 머무는 것은 내 고향이 바로 철원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그곳의 학 저수지. 지난 2월 철이 없어 보이는 한 무리의 남녀가 그곳에 와서는 뛰고 까불고 놀다가 저수지 위에 한가득 쌓인 눈으로 나를 빚었다. 아담한 몸통 위에 그보다 더 아담한 머리통을 얹고는 어디선가 꼬챙이 같은 나뭇가지를 줏어 와서 머리 위에 더듬이처럼 꽂았고, 얼굴에는 조개껍데기 두 개를 눈처럼 붙여 놓았다.

꼭 영화 <가디언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여 주인공 맨티스 같지 않은가. 누군가 이름을 '더듬이'라고 하면 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더듬이가 됐다. 그들은 나와 다정하게 기념 사진까지 찍었지만 자신들이 타고 온 차에 태워가지는 않았다.
그 후 날이 풀리면서 내 몸은 다 녹아 버렸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름으로나마 환생한 셈이다.
아, 오늘은 조금만 더 쓰다가는 무슨 판타지 소설 쪽으로 흘러갈 것 같다. 이 정도로 하자. 내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으리라 믿는다. 여러분 오늘도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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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오후네시 | 17일 전

더듬이는 숨을 어디로 쉬나요?

더듬이 | 17일 전

사진에선 방긋 웃고 있는 입으로 쉬지요 ^^

봉천동 에리히프롬 | 16일 전

더듬아 두고와서 미안하다. 너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차 시트가 다 젖을까봐..

콜리플라워 | 13일 전

아니 이 글 너무 귀여운데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