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소묘
2025-04-16 07:19
오늘 자각몽을 꿨다. 여행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내 현실 속 내용들로 짜깁기해 구성되어 있었고 이야기 전개도 꽤 그럴듯했다. 그래서 꿈을 꾸는 동안에도 재미가 있었다. 그걸 어렴풋이 알아채고도 영화 엔딩 부분을 감상하듯 그 속에 머물렀던 것 같기도 하다. 벌써 많이 흩어졌지만 몇몇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일어나서 동네 산으로 향했다. 정상쯤에 체력단련장이 있다.
돈이 많으면 나쁜 짓을 하게 돼 있어. 내가 그랬거든. 그래서 잘 알아. 내가 젊을 때 돈이 좀 있었는데 무지 바람을 폈어. 이른 시간에 나오는 분은 두셋 정도다. 그중 한 분인 A 노인의 다소 느닷없는 과거 이야기는 처음엔 얼마간 참회 같더니만 어느새 제풀에 탄력을 받아 한창 때의 무용담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보다 연배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B 노인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멀찍이서 운동기구와 씨름하고 있는 내 귀도 자꾸만 그쪽으로 쏠렸다. A 노인의 이야기는 한 십 분간 이어졌다. 발단은 어제 뉴스인 것 같았다. 몇몇 연예인 이름을 앞세운 이야기가 오가다 엉뚱하게도(?) A 노인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지나고 보니 다 허망한 것이었다"는 게 이야기의 결론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게 제일이라는 다분히 맥 빠지는 교훈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귀착됐다.
운동을 마치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하산을 시작하면 요즘엔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맘때면 잠에서 깬 새들의 노래 소리도 요란하다. 봄의 아침 숲속을 아름답게 수놓는 새소리는 사실은 덩치가 큰 새의 것이 아니다. 한번은 인내심을 갖고 새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집요하게 관찰한 끝에 가지 사이로 아주 작은 새가 그토록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개는 참새만 한 아주 작은 새인 경우가 많다. 작을수록 곡조가 정교하고 아름답고 청아하다. 두루미 같은 큰 새가 두루룩 하고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울부짖듯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오늘도 익숙한 듯 새로운 음색이 들려와 소리가 나는 쪽의 나무들을 차례로 훑어 내렸다. 왠 걸, 한참을 봤는데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좋아 노래를 녹취부터 했다. 끝내 소리의 출처가 되는 새는 발견을 못하고 돌아서려는데 내가 열심히 찾아 댔던 나무의 우듬지 쪽이 아니라 바로 앞 나무 허리 쯤에서 표로롱하고 작은 새가 달아나듯 날아가는 게 아닌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보내느라 가까이 있는 걸 못 본 거다. 그 녀석은 거기서 무슨 생각에서 그토록 화려한 음조로 노래를 하고 있었던 걸까?
숲의 나무를 보면 그냥 수직으로 자라는 경우가 드물다. 저마다 개성이 있다. 수목원 같은 곳이나 조경 사업을 벌인 곳의 나무를 보면 일렬로 우뚝하게 수직으로 솟은 것이 많은데, 이런 자연림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 그냥 반듯한 것이 없다. 같은 종의 씨앗이 같은 곳에 뿌리를 내려 같은 조건에서 움트고 자랐고 햇빛의 방향도 같은데 무슨 조합의 결과가 저런 천차만별을 만들어 내는 걸까. 하물며 식물도 그런 다음에야. 동물이며 인간은.. 내가 자연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다양성이다. 반면 그것과 대비되어 보이는 게 오늘날 인간 사회의 반대 경향이다. 그 중심에는 기계화와 자동화, 수량화가 있다. 오늘 읽은 두 개의 글도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돈이 많으면 나쁜 짓을 하게 돼 있어. 내가 그랬거든. 그래서 잘 알아. 내가 젊을 때 돈이 좀 있었는데 무지 바람을 폈어. 이른 시간에 나오는 분은 두셋 정도다. 그중 한 분인 A 노인의 다소 느닷없는 과거 이야기는 처음엔 얼마간 참회 같더니만 어느새 제풀에 탄력을 받아 한창 때의 무용담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보다 연배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B 노인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멀찍이서 운동기구와 씨름하고 있는 내 귀도 자꾸만 그쪽으로 쏠렸다. A 노인의 이야기는 한 십 분간 이어졌다. 발단은 어제 뉴스인 것 같았다. 몇몇 연예인 이름을 앞세운 이야기가 오가다 엉뚱하게도(?) A 노인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지나고 보니 다 허망한 것이었다"는 게 이야기의 결론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게 제일이라는 다분히 맥 빠지는 교훈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귀착됐다.
운동을 마치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하산을 시작하면 요즘엔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맘때면 잠에서 깬 새들의 노래 소리도 요란하다. 봄의 아침 숲속을 아름답게 수놓는 새소리는 사실은 덩치가 큰 새의 것이 아니다. 한번은 인내심을 갖고 새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집요하게 관찰한 끝에 가지 사이로 아주 작은 새가 그토록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개는 참새만 한 아주 작은 새인 경우가 많다. 작을수록 곡조가 정교하고 아름답고 청아하다. 두루미 같은 큰 새가 두루룩 하고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울부짖듯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오늘도 익숙한 듯 새로운 음색이 들려와 소리가 나는 쪽의 나무들을 차례로 훑어 내렸다. 왠 걸, 한참을 봤는데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좋아 노래를 녹취부터 했다. 끝내 소리의 출처가 되는 새는 발견을 못하고 돌아서려는데 내가 열심히 찾아 댔던 나무의 우듬지 쪽이 아니라 바로 앞 나무 허리 쯤에서 표로롱하고 작은 새가 달아나듯 날아가는 게 아닌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보내느라 가까이 있는 걸 못 본 거다. 그 녀석은 거기서 무슨 생각에서 그토록 화려한 음조로 노래를 하고 있었던 걸까?
숲의 나무를 보면 그냥 수직으로 자라는 경우가 드물다. 저마다 개성이 있다. 수목원 같은 곳이나 조경 사업을 벌인 곳의 나무를 보면 일렬로 우뚝하게 수직으로 솟은 것이 많은데, 이런 자연림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 그냥 반듯한 것이 없다. 같은 종의 씨앗이 같은 곳에 뿌리를 내려 같은 조건에서 움트고 자랐고 햇빛의 방향도 같은데 무슨 조합의 결과가 저런 천차만별을 만들어 내는 걸까. 하물며 식물도 그런 다음에야. 동물이며 인간은.. 내가 자연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다양성이다. 반면 그것과 대비되어 보이는 게 오늘날 인간 사회의 반대 경향이다. 그 중심에는 기계화와 자동화, 수량화가 있다. 오늘 읽은 두 개의 글도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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