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고요한
2025-05-18 08:44

비온 뒤 함초롬히 물기 머금은 풀잎 끝에서 전해오는 팽팽한 생명의 기운. 그래,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  뭔지는 몰라도, 뭐가 됐든.

생물학적인 생이 있고 생각의 체로 걸러진 삶이 있다. 체의 눈이 촘촘할수록 삶의 밀도는 높아진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맨발로 서서 멀리 떠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나란히 올리고 부동 자세로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를 본다. 새로 뜨는 태양의 신선한 기운을 받으려는 걸까. 그 주변에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를 닮았다. 여기 식물을 닮고 싶어 하는 동물이 있다.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공룡, 바다로 돌아간 뭍 짐승, 날기를 포기한 끝에 걸을 수만 있게 된 어떤 새... 스스로 운명을 바꾼 종은 한둘이 아니다. 인류는 지금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나는?

쓰기에는 지배의 쓰기가 있고 돌봄의 쓰기가 있다. 이곳에서만큼은 돌보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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