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새서울도련님 프로필 새서울도련님
2026-07-19 23:57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우연한 기회로 책 한 권을 가지고 친구 그리고 친구의 친구와 긴 시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북클럽 오리진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번 짧은 방문 이후 제대로 된 근황 글을 하나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3주나 흘렀네요.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여전히 비슷한 형태의 삶을 긴장으로 꽁꽁 묶어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는 지금 회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올해 상반기는 AI를 필두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이해하여 작년과 같은 하반기가 되지 않게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결과적으로 AI를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올 하반기라고 해서 작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라지는 건 더 싫기에 여전히 매주 짧게나마 글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또 글을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대신 일을 하고 있는 AI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지만요.

이번에 읽은 책은 앤드루 포터라는 작가의 ‘상상 속의 삶’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지역이 나오면 좀처럼 집중이 잘되지 않는 터라 외국 소설보다는 한국 소설, 그중에서도 현대 소설을 좋아하는데, 워낙 몰입감 있게 잘 쓰인 책이라 힘들이지 않고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10대 초반일 때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의 흔적을 40년 가까이 지난 현재 다시 찾기 시작하면서, 그 시절 부모님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을 선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하는 책이라는 평가를 어디선가 봤는데 진부하더라도 정확한 문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피분들, 특히 80년대 감성에 대한 향수가 있으신 분은 더욱 추천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왜 오리진이 떠올랐을까요? 지금에서 그 고리를 되짚어 본다면 아마 ‘내 생각을 말하는 과정의 안정감에 대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들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얼마나 멀리서 오는지 궁금해 학생에게 던진 “넌 어디 살아?”라는 말이 “저는 빌라 사는데요”와 같은 가시 박힌 대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입에 붙은 사투리를 썼을 뿐인데 극우 커뮤니티 유저로 몰리기도 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의 모임들에서 좋았던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와 같은 동질감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을 이야기해도 되는구나” 같은 안정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그런 비슷한 안정감을 느꼈기에 귀가길에 오리진이 떠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 물론 북토크가 끝난 후 저녁을 나눠 먹으며 추가로 나누었던 더 넓은 이야기들 덕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5년 전에 합주했던 곡을 다시 연주할 일이 최근에 생겼습니다. 당시에 연주를 영상으로 남겨 둔 게 있어 들어보니 결코 틀리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연주에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늬앙스'가 부족했습니다. 1년간 기타 레슨을 받으면서 즐거운 순간만큼이나 지루하고 괴로운 순간들도 많았는데 그 순간들을 넘어간 덕분에 음악을 표현하는 언어를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안다고 그렇게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우연히 서울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이 유퀴즈에 출연하신 영상을 봤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의 자제분이시기도 했는데 우리가 책을 읽고 단어를 많이 알수록 ‘말의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도 내 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에 읽은 책에서 제 잔고를 늘려준 문단을 하나를 남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자산이 급등하는 4개월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사람들은 즉시 죽지 않고 어떤 삶의 기운에 잠긴 채 남아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불멸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를 통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생각 속에 머문다.
마치 그들이 해외여행을 떠난 것처럼.

P.S. 3회차 혹은 4회차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시즌은 함께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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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데모도코스 프로필 데모도코스 | 11시간 전 (수정됨)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
흉포한 군부 독재를 타도하면 좋은 세상이 될까, 고민하고 분투한 적이 있습니다.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이뤄냈지요.
그래도 마뜩잖더군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고 노동 해방을 이루면 좋은 세상이 될까.
먼저 시도해 봤던 사회주의권이 별안간 무너지더군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자유의 신천지 인터넷 시대가 열리더군요.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부터 좋은 세상이 오는 걸까.
과연 그런가요.
정권이 바뀌어도, 체제가 바뀌어도, 신통방통한 기술이 등장해도,
나아가 기본소득으로 모두가 생계 불안에서 벗어난다 해도,
사람을 능가한다는 AI가 발전해서 모두가 궂고 귀찮은 일에서 해방된다 해도
인간이 좋은 삶을 꿈꾸는 한
여전히 불변의 상수로 남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만나서 마음 속의 생각을 나누는 일 말이에요.
각자의 삶,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 지금 괜찮은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이대로도 좋은지, 놓친 건 없는지, 잊고 있는 건 없는지, 더 기대할 건 없는지, 더 열망하는 건 없는지, 더 꿈꿀 건 없는지...
물론 생이 선물하는 갖가지 뜻밖의 발견과 기쁨과 즐거움, 놀라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지요.
또한 혼자선 견디기 힘든 슬픔과 비통함, 안타까움, 어이없음까지도요.
수십 만 년 전 고단한 하루 일과 후 모여 앉은 어두운 동굴 속 일렁이는 모닥불 앞에서나
머나먼 우주 어느 식민지 별의 외딴 기지 안에서나
우리는 여전히 대화 가능한 누군가를 만나 각자의 삶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고, 공감하고 싶어할 겁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와 쿠키를 떠올려보세요.)
그것이야말로 (적어도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살게 되어 있는 한) 인간 삶의 근본 토대가 아닐까 싶어요.
북클럽 오리진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새서울도련님이 '생각을 말하는 과정의 안정감'을 떠올리셨다면 아마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네요.
책을 읽고 단어를 알아가며 '말의 부자'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레퍼토리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삶의 레퍼토리를 잇고 늘리고 채워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시즌에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일리아스>가 '일리온(트로이 성)의 노래'인 것처럼, <오뒷세이아> 또한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저만(사실은 우리)의 노래를 부르다 사라져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도 꼭 짝짓기만을 위한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라진 후에도 마치 메아리처럼 누군가가 그 사람의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준다면 더없는 기쁨일 테고요.
바꿔 생각해 보면 인류는 다함께 거대한 책을 써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할 수만 있다면 저마다 한 줄, 한 단락, 한 쪽, 한 장을 채워가는 거지요.
왜, 그거 있잖아요. 행복공장 수련원 독방에 놓여 있던 일지들. 그 방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들이 서로서로 써내려간 것을 읽고 또 한 줄을 보탤 때의 그 느낌.
요즘은 오리진을 별자리로 생각해보곤 합니다.
별자리란 별이 무리를 이뤄 어떤 형상을 빚은 것처럼 보일 때 붙이는 이름이지요.
오리진의 별무리는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새로운 별이 등장했다가 빛이 흐려졌다가 사라졌다가 또 다시 나타나기도 하지요.
오늘 잠시 어둠 속에 잠복했던 새서울도련님 별이 반짝하고 다시 빛을 발한 것만 같아 더없이 반갑네요.
양 치는 목자가 되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야기에서 읽은 것처럼 '잃어버린 양'이 돌아온 것만큼이나 기쁘네요. ㅎㅎ
조만간 합류하신다니,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