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우연한 기회로 책 한 권을 가지고 친구 그리고 친구의 친구와 긴 시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북클럽 오리진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번 짧은 방문 이후 제대로 된 근황 글을 하나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3주나 흘렀네요.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여전히 비슷한 형태의 삶을 긴장으로 꽁꽁 묶어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는 지금 회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올해 상반기는 AI를 필두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이해하여 작년과 같은 하반기가 되지 않게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결과적으로 AI를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올 하반기라고 해서 작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라지는 건 더 싫기에 여전히 매주 짧게나마 글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또 글을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대신 일을 하고 있는 AI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지만요.
이번에 읽은 책은 앤드루 포터라는 작가의 ‘상상 속의 삶’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지역이 나오면 좀처럼 집중이 잘되지 않는 터라 외국 소설보다는 한국 소설, 그중에서도 현대 소설을 좋아하는데, 워낙 몰입감 있게 잘 쓰인 책이라 힘들이지 않고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10대 초반일 때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의 흔적을 40년 가까이 지난 현재 다시 찾기 시작하면서, 그 시절 부모님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을 선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하는 책이라는 평가를 어디선가 봤는데 진부하더라도 정확한 문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피분들, 특히 80년대 감성에 대한 향수가 있으신 분은 더욱 추천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왜 오리진이 떠올랐을까요? 지금에서 그 고리를 되짚어 본다면 아마 ‘내 생각을 말하는 과정의 안정감에 대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들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얼마나 멀리서 오는지 궁금해 학생에게 던진 “넌 어디 살아?”라는 말이 “저는 빌라 사는데요”와 같은 가시 박힌 대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입에 붙은 사투리를 썼을 뿐인데 극우 커뮤니티 유저로 몰리기도 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의 모임들에서 좋았던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와 같은 동질감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을 이야기해도 되는구나” 같은 안정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그런 비슷한 안정감을 느꼈기에 귀가길에 오리진이 떠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 물론 북토크가 끝난 후 저녁을 나눠 먹으며 추가로 나누었던 더 넓은 이야기들 덕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5년 전에 합주했던 곡을 다시 연주할 일이 최근에 생겼습니다. 당시에 연주를 영상으로 남겨 둔 게 있어 들어보니 결코 틀리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연주에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늬앙스'가 부족했습니다. 1년간 기타 레슨을 받으면서 즐거운 순간만큼이나 지루하고 괴로운 순간들도 많았는데 그 순간들을 넘어간 덕분에 음악을 표현하는 언어를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안다고 그렇게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우연히 서울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이 유퀴즈에 출연하신 영상을 봤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의 자제분이시기도 했는데 우리가 책을 읽고 단어를 많이 알수록 ‘말의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도 내 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에 읽은 책에서 제 잔고를 늘려준 문단을 하나를 남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자산이 급등하는 4개월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사람들은 즉시 죽지 않고 어떤 삶의 기운에 잠긴 채 남아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불멸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를 통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생각 속에 머문다.
마치 그들이 해외여행을 떠난 것처럼.
P.S. 3회차 혹은 4회차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시즌은 함께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P.S. 3회차 혹은 4회차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시즌은 함께하는 상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