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가 아닌 것들을 믿는다는 것

메모장 프로필 메모장
2026-07-08 13:42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불편해하다가도 AI와의 대화는 편안해할까요?

대화는 곧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는 내가 속하고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줄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로를 단지 알아가고 연결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경험하고 살면서 생긴 생각의 틀에 일종의 영향을 줍니다. 결국 책 역시 그런 이야기를 받아적은 것들이라서, 프란츠 카프카가 책을 '얼어붙은 우리 내면을 깨부수는 도끼' 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이런 발상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각종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근사한 나의 이야기도 갖고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하면 나의 이야기가 근사해질 수 있을까? 그걸 바라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모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그다지 감흥은 없는 이야기, 또는 알고싶지조차 않을 정도로 싫은 이야기 같은 것들도 생기게 됩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만, 이런 모든 이야기 속에 인물이 있다면 우리는 그 인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것이 '나는 어떤 주인공과 닮고 싶을까?' 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안에서 타인과 나를 모두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발견한 그 타인 또는 나의 모습들이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 만큼 근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또는 내가 무엇을 근사한 이야기라고 여겨 왔는지, 기준 자체를 흔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깨부숴짐을 당하는 것을 반기자면 어쩌면 조금 더 본질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가게 될 가능성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런데 AI와의 대화속에는 이 깨부숴짐이 없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인식할 때 왜곡된 상으로 인식합니다. 이데아의 완전무결하고 절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다 보니 최근에 뜻밖의 충격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눈이 '나는 이 부분을 더 예쁘게 그리고 싶으니까 여기를 훨씬 과장해서 집중해서 볼거야. 그런데 이 부분은 별로 그리고 싶지 않으니까 눈에 안담을거야'라는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저 부분은 그리기 골치 아프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을 눈이 알아서 피하거나 흐릿하게 보고 있었던 겁니다. 시각이 이런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이나 타인을 볼 때도 인식하는 원리는 어쩌면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게 좋은 면이 되었든 나쁜 면이 되었든지간에, 먼저는 '나'의 관심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강조해서 보고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은 흐릿하게 보는 겁니다. 

AI는 이런 시각의 왜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화"합니다.
저는 이것을 대화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AI가 하는 이야기의 형식은 대화인 것 처럼 질문과 답이 오가지만 그 내용은 우리를 깨부숴주지 못합니다. 결국 '내가 믿고 싶은 근사한 이야기'라는 미로에 스스로 갇히게끔 만드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비유하는 '백설공주 동화 속 여왕의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 말, 창작물과 같은 것을 보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탈피와도 같다면, 같은 허구를 보더라도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생성'해주는 AI는 고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