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모임에서 했던 얘기를 글로 풀어보자.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다듬고 그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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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댄서 출신으로서 <척의 일생>에 나오는 춤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비보이에는 크게 2가지 스타일이 있어요. 어떤 음악이 나오던 동작을 순서대로 정해놓고 추는 댄서와, 동작을 정해놓지 않고 비트에 몸을 맡기는 즉흥적인 댄서가 있죠. 비보이들은 양극단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저는 즉흥적인 댄서에 가까웠어요. 2막에서 드러머가 말하는 "비트가 친구고 생각은 적이다"를 매우 공감하는 입장이죠. 비트에 몸을 맡겼을 때의 그 즐거움을 압니다. 어린 척이 학교 무도회에서 주인공이 된 감정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 <척의 일생>을 보면서 느꼈어요. 척이 춤에서 느낀 벅참은 제가 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요.
제가 추는 춤과, 척이 추는 춤은 뭐가 다를까요? 바로 혼자와 함께입니다. 척의 춤은 '파트너 댄스'이고 항상 관계 속에서 춤을 췄어요. 물론 비보이도 함께 출 수 있지만, 그 경우는 동작을 맞춰놓고 합니다. 그런데 척이 추는 '파트너 댄스'는 함께 '즉흥'으로 춥니다. 혼자서 '즉흥'으로 출 때도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 한데 둘이 '즉흥'으로 출 때는 어떨까요? 게다가 그 음악을 깔아주는 드러머까지 '즉흥'이라니 3개의 즉흥 세계가 만나면 다음 스텝과 비트를 도저히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온전히 서로가 뿜어내는 즉흥들에 실시간으로 반응합니다. 그 몰입력과 즐거움은 배가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트너 댄스'를 추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마냥 부러워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 댄서이고 '파트너 댄스'를 얼마간 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는 즉흥과 즉흥이 만나는 장입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깊은 대화는 우리의 마음에 벅참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벅찬 대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스텝을 많이 알고 있는 댄서가 즉흥 춤을 잘 추듯이, 우리도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화에 서툰 사람이 있다면 리드하여 동작(생각)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비트(맥락)에 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보면 우려스럽습니다. 사람들의 춤이 점점 서툴러지고 있거든요. AI에 생각을 외주화하고 도파민에 절여지고 있기 때문이죠. 함께 춤출 파트너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에요. Shall we dance?라고 춤를 청하면 자기가 나오는 대신 AI를 앞세우죠. 그럼 저는 흥이 팍 식어고 춤출 마음도 싹 사라집니다.
위 우려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더욱 '북클럽 오리진'이라는 무도회에 매달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화라는 춤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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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댄서 출신으로서 <척의 일생>에 나오는 춤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비보이에는 크게 2가지 스타일이 있어요. 어떤 음악이 나오던 동작을 순서대로 정해놓고 추는 댄서와, 동작을 정해놓지 않고 비트에 몸을 맡기는 즉흥적인 댄서가 있죠. 비보이들은 양극단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저는 즉흥적인 댄서에 가까웠어요. 2막에서 드러머가 말하는 "비트가 친구고 생각은 적이다"를 매우 공감하는 입장이죠. 비트에 몸을 맡겼을 때의 그 즐거움을 압니다. 어린 척이 학교 무도회에서 주인공이 된 감정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 <척의 일생>을 보면서 느꼈어요. 척이 춤에서 느낀 벅참은 제가 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요.
제가 추는 춤과, 척이 추는 춤은 뭐가 다를까요? 바로 혼자와 함께입니다. 척의 춤은 '파트너 댄스'이고 항상 관계 속에서 춤을 췄어요. 물론 비보이도 함께 출 수 있지만, 그 경우는 동작을 맞춰놓고 합니다. 그런데 척이 추는 '파트너 댄스'는 함께 '즉흥'으로 춥니다. 혼자서 '즉흥'으로 출 때도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 한데 둘이 '즉흥'으로 출 때는 어떨까요? 게다가 그 음악을 깔아주는 드러머까지 '즉흥'이라니 3개의 즉흥 세계가 만나면 다음 스텝과 비트를 도저히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온전히 서로가 뿜어내는 즉흥들에 실시간으로 반응합니다. 그 몰입력과 즐거움은 배가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트너 댄스'를 추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마냥 부러워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 댄서이고 '파트너 댄스'를 얼마간 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는 즉흥과 즉흥이 만나는 장입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깊은 대화는 우리의 마음에 벅참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벅찬 대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스텝을 많이 알고 있는 댄서가 즉흥 춤을 잘 추듯이, 우리도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화에 서툰 사람이 있다면 리드하여 동작(생각)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비트(맥락)에 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보면 우려스럽습니다. 사람들의 춤이 점점 서툴러지고 있거든요. AI에 생각을 외주화하고 도파민에 절여지고 있기 때문이죠. 함께 춤출 파트너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에요. Shall we dance?라고 춤를 청하면 자기가 나오는 대신 AI를 앞세우죠. 그럼 저는 흥이 팍 식어고 춤출 마음도 싹 사라집니다.
위 우려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더욱 '북클럽 오리진'이라는 무도회에 매달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화라는 춤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