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지능 시대 인간 지능

더듬이 프로필 더듬이
2026-06-09 21:02
미국의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가 5월 23일 미국의 바드 칼리지 졸업식에서 한 연설을 소개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는 인공 지능보다 인간 지능의 고유성과 가치를 옹호한다.

원문: Human intelligence will win out over artificial intelligence

모든 세대는 인류를 압도할 운명처럼 보였던 변혁적인 기술들과 마주해 왔습니다. 인쇄기,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이 그 사례들입니다. 이 기술들은 경이와 공포를 똑같이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AI가 등장했습니다. AI는 에세이를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질병을 진단하고, 고차원적인 수학을 풀고, 영상을 생성하고, 전문 자격 시험에 합격하며, 놀라울 정도로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인간에게 남는 일은 뭘까요?”
   
하지만 이건 잘못된 질문일지도 모룹니다. 더 나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AI는 우리 인간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우리가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하게 수행하는 일들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저는 이 점에 관한 한 지극히 희망적입니다.
   
먼저 인간 두뇌가 지닌 기적 같은 점을 생각해 보세요. 인간 두뇌의 무게는 약 3파운드입니다. 작동하는데 약 20와트의 전력이 필요합니다. 냉장고 전구를 희미하게 밝히는 데 필요한 정도의 에너지입니다. 반면 세계 최첨단 AI 시스템 일부를 훈련시키려면 수억 와트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가 필요합니다. 도시 전체가 필요로 하는 전력 양입니다. 데이터 시설은 수백 에이커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거대한 서버와 방대한 냉각 시스템, 수 마일에 달하는 케이블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의 3파운드짜리 뇌는 두개골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며, 노트북 충전기보다 적은 에너지만 씁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일들을 해냅니다. 유아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얼굴을 즉시 알아보고, 어조와 감정을 이해하며, 붐비는 방을 헤쳐 나가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의도를 추론하며, 맥락을 파악합니다. 그것도 다 수월하게 해냅니다. 인간은 아이러니, 모호함, 애정, 당혹감, 사랑, 수치심, 유머,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침묵 속의 긴장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미소 속에 숨겨진 위선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기계는 분석에 탁월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이상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이 함께 사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 얀 르쿤이 지적했듯이, 인간의 지능은 단순한 계산이 아닙니다. 수백만 년 진화 위에 쌓인 신체화된 경험, 사회적 이해, 그리고 정서적 인식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열등한 컴퓨터로 상상하는 것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간 지능을 기계가 최적화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 즉 좁은 형태의 분석적 추론으로 축소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마이클 폴란이 상기시켜 주듯, 인간의 의식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고 신비롭습니다.
   
기계는 슬프디 슬픈 시를 쓸 수는 있겠지만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릴 순 없습니다. 애절한 사랑 편지를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사랑에 빠질 순 없습니다. 두려움을 묘사할 수는 있겠지만, 새벽 3시에 잠 못 이루며 자기 인생을 낭비했는지 걱정할 순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차원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우리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다시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AI가 생성한 소설, 에세이, 그림, 노래, 영상이 온라인상에 수백만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볼 때 일부는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왜일까? 예술은 최종 결과물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그 뒤에 있는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또 다른 인간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와 공감합니다.
   
디킨스나 토니 모리슨,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페이지 위에 우아하게 배열된 단어들을 소비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또 다른 인간이 분투하고, 고통받고, 상상하고, 의심하고, 희망하며, 어떻게든 그 모든 것을 언어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에 마음을 씁니다. 이 글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영어권의 가장 위대한 시인 존 키츠는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실과 이성을 향해 성급하게 손을 뻗는 것” 없이 불확실성, 의심, 그리고 신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일본의 전통 사상에서 '와비사비'는 불완전함, 미완성, 비대칭, 덧없음, 거칠음, 그리고 불규칙성을 찬미합니다. 수제 도자기가 소중히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인간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비대칭, 고르지 않은 유약, 그리고 개성과 장인정신을 드러내는 왜곡된 형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깨진 도자기는 때로 금으로 선을 그어 수리하는데, 이를 ‘킨츠기’라고 합니다. 금은 금을 감추는 대신 빛나게 합니다. 그 결과 표면은 거칠어지지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그 연약함과 수리의 흔적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사회는 인간을 주로 분석 기계로 생각하도록 부추겨 왔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AI가 우리로 하여금 그 전체적인 생각의 틀을 재고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계가 순수한 분석, 계산, 암기, 패턴 인식에서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때,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은 오히려 더 잘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AI 시대의 위험은 기계가 너무 인간처럼 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너무 기계처럼 되려고 애쓰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수면, 생산성, 인맥, 브랜딩, 성과 등 삶의 모든 측면을 ‘최적화’해야 한다고 점점 더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을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력서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노동자들은 지치지도 잠들지도 않는 알고리즘과 비교되어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번영은 최적화에 관한 것이 아니며, 과거에도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은 종종 지저분하고, 비선형적이며, 모순적이고, 감성적이며, 비효율적입니다. 우리 삶을 가장 깊이 있게 형성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최적화'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를테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당신에게 영감을 준 선생님, 당신이 상심했을 때 몇 시간 동안 곁을 지켜준 친구, 자녀를 위해 수십 년간 희생한 부모, 죽음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은 활동가, 호기심으로 실패를 극복한 과학자 말이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고난 속에서 피어납니다. 언젠가는 기계가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교향곡을 작곡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계는 귀가 거의 먹은 상태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중 하나인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베토벤의 고뇌는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교향곡을 들을 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단순히 음표의 배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결코 들을 수 없는 초월적인 소리를 창조하기로 결심한 작곡가의 슬픔, 인내, 그리고 승리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HI, 즉 인간 지능이 중요한 것입니다. AI보다 빠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온 경험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고, 건설하거나, 무엇을 위해 희생할 가치가 있는지는 여전히 인간 지능이 결정합니다.
   
여러분 세대는 엄청난 기술적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AI는 의학, 과학, 교육, 교통, 통신, 그리고 어쩌면 오늘 이곳에 모인 모든 직종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일부 직업의 형태는 완전히 바뀔 수 있고, 산업 전체가 진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격변 속에서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여전히 갈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이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쳐 주기를 원할 것이며, 질병과 고통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슬픔의 순간에 위로해 줄 인간을 원할 것입니다. 위기의 시기에 그들을 이끌어 줄 인간을 원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건에 관한 예술을 만들어 줄 인간을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인간 삶의 본질은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좋든 나쁘든 다른 인간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로부터 인정과 존엄, 애정과 사랑을 구합니다.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컴퓨터나 AI로부터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간혹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데이터는 압도적으로 분명히 말해줍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우리는 외롭고 슬퍼집니다. 학자 셰리 터클이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기술을 받아들여 우정이 주는 부담이나 보상이 없는 동반자 관계의 환상을 얻었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여러분이 AI의 조건에 맞춰 AI와 경쟁하기보다는, 여러분이 보다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AI가 촉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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