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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실패로 인해 내면으로의 침잠, 그리고 성장

봉천동 조지오웰
2025-11-19 09:41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를 읽던 중 로댕의 삶이 번뜩 떠오르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아이슈타인의 구직 실패로 가게 된 특허청에서 그리고 앙드레 베유와 안토니오 그람시가 내몰린 교도소에서 뜻밖의 내면 성장을 이뤄내는 부분이다. 얼마 전 읽은 로댕의 무명 시절이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기에 여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쓰고 미술문화에서 1998년 번역 출판한 <릴케의 로댕>에서 발췌했다. (오! 지금 보니 최근 개정판이 출간됐다)

그의 예술이 학습한 모든 삶이 이름이 없는 것이고 어떤 의미도 갖지 않았던 그 시절에, 로댕은 시인들의 책 속을 배회하며 사색했고, 거기서 하나의 과거를 얻어왔다. 그리하여 훗날 로댕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이 소재영역들을 다시 어루만졌을 때, 형상들은 그의 내부에서 자기 생애의 기억처럼 아프고 생생하게 떠올랐으며,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마침내, 고독한 작업의 몇 해가 지나고 나서 그는 작품 한 점을 가지고 세상을 나서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대중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중은 부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로댕은 다시 십삼 년을 칩거하였다. 여전히 무명의 존재로서 그는 이 기간 동안 대가로 성숙하였으며, 끊임없는 작업과 사색과 노력 끝에 그는 자신과 공유할 것이 없는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고유한 수단들을 제약 없이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훗날 사람들이 그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작품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그의 전체발전이 방해받지 않은 이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아마도 그에게 저 끄떡없는 확고함을 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제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모두 그의 뒷전에 있었다. 그의 운명은 더 이상 대중의 갈채나 비판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그의 운명을 조롱과 악의로 무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가 성장하고 있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소리가 그에게 들려온 적이 없었다. 그를 착각에 빠지게 했을 칭찬의 말도 그를 방황하게 했을 비난의 말도 없었다. 파르지팔이 성장할 때 그랬듯이 그의 작품은 순수한 상태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과 함께, 위대하고 영원한 자연과 함께 자라났다. 그에게 말을 건 것은 그의 일뿐이었다. 일은 아침에 깨어날 때 그에게 말을 걸었고, 저녁에는 연주를 마치고 내려놓는 악기처럼 그의 손 안에서 여음을 울렸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다 자란 상태로 세상에 태어 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정복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야 하는 자라나는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관철된 현실로서, 이미 존재하는 현실로서 나타났기에,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그 자체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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